항목 ID | GC60004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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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谷洞-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지현 |
중단 시기/일시 | 1950년 6월 - 금곡동 배재마을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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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은행나무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옛 배재마을 위 모정 옆 |
의례 장소 | 선돌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옛 배재마을 앞 |
성격 | 마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4일 |
신당/신체 | 은행나무|선돌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배재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금곡동 배재[梨峙]마을 당산제는 배재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6.25전쟁 전까지 모셨던 마을 제사이다. 예전에 당산제를 모시던 방식이 몇몇 촌로들 사이에 띄엄띄엄 기억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6.25전쟁 때 마을 사람들이 흩어지고 제사 비용을 마련하는 일도 어려워져서 중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두 곳의 당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충장사(忠壯祠)에서 금곡마을로 가는 길목 왼쪽[배재마을 위쪽]의 모정(茅亭) 옆에 100년쯤 된 은행나무이다. 또 하나는 배재마을 입구에서 약 200m 거리에 있던 논 주변의 선돌이다.
[절차]
금곡동 배재마을 당산제는 원래 제관을 따로 선정하지 않고, 제물도 장만하지 않고, 굿물로만 제사를 모셨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제물 준비에 필요한 금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였으며, 굿물 장만에 필요한 돈은 전년도의 마당밟이를 통해 모아진 돈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음력 1월 14일 저녁 때가 되면 굿물패들이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굿을 하다가 밤 10시경에 당산 주변으로 가서 굿을 하였다. 상쇠의 꽹과리에 맞추어 절을 두 번하는 것으로 제사를 지내고, 당산제가 끝나면 마을의 샘과 회관 등에서도 굿을 하였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난 다음날에는 굿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마당밟이를 하였다.
[현황]
6.25전쟁 이후 중단된 뒤 오늘날에도 제를 올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