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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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倉- |
이칭/별칭 | 서창만드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형성 시기/일시 | 1999년 - 「서창 들노래」 주민들의 뜻을 모아 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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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 시기/일시 | 2012년 - 「서창 들노래」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 세동마을에서 김용철의 노래를 채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5년 - 「서창 들노래」 향토문화개발협의회와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간행한 『광주의 농요』 ‘서창만드리’에 수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2년 - 「서창 들노래」 한국민속예술축제 동상 수상 |
채록지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
가창권역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
가창권역 | 세동마을 - 광주광역시 서구 세하동 |
성격 | 노동요|농요 |
토리 | 육자배기토리 |
기능 구분 | 벼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노래 |
형식 구분 | 선후창 |
가창자/시연자 | 정종섭|이인주|배삼곤|정영을|김용철|정병철 |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일대에서 벼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노동요.
[개설]
서창동 일대는 영산강을 지척에 두고 농경에 적합한 비옥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논농사가 발달한 지역이다. 1970년대까지는 들녘에서 들노래가 울려퍼졌지만, 농촌 인구 감소와 기계영농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었다. 1999년 주민들이 뜻을 모아 들노래를 복원한 후 현재까지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 2009년과 2011년, 2019년, 2020년 광주광역시 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였으며, 2010년과 2012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해 동상을 수상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2012 한국민속예술축제 팸플릿에 「서창 들노래」 가사와 연행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으며, 2015년 향토문화개발협의회와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간행한 『광주의 농요』 ‘서창만드리’에 「서창 들노래」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018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조사한 「서창 들노래」는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구비문학대계 https://gubi.aks.ac.kr)에 수록되었다.
[구성 및 형식]
「서창 들노래」는 영산강 유역에 넓게 분포된 긴소리권의 민요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전라도 서남해 도서지역에 분포된 절로소리가 가미된 들노래이다.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장원질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모심기소리」는 '긴상사소리'와 '잦은상사소리'로 이루어져 있고, 「논매기소리」는 '초벌매는소리', '두벌매는소리', '만드리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가창 방식은 선후창이다.
[내용]
가창 일시: 2012년 7월 26일
가창 장소: 서구 세하동 세동마을
앞소리: 김용철[남, 1966년생]
1. 「모찌기소리」
(후렴) 에헤라 무언들
먼들 소리를 맞춰 보세/ 먼데 사람들 보기도 좋게/ 옆에 사람들 보기도 좋게/ 흥청흥청 무어보세/ 우리 농부들 잘도 허네/ 저기 가는 저 한량아/ 나와 같이 모를 찌소/ 천하문장 이 적선도/ 밭을 갈고 글을 읽어/ 명전천추 하였으니/ 우리 같은 농부들도/ 밭도 갈고 글을 읽어/ 주경야독 허여보세 / (후략)
2-1. 「모심기소리」-긴상사소리
(후렴) 여~허~ 여허~ 여허루~ 상 사 디여
여~허~ 여허~ 여허루~ 상 사 디여/ 여보소 농부네들 이내말을 들어보소/ 어허와 농부들 말들어요/ 전라도라 허는디는 심산이 비친 곳이라/ 우리 농부들도 상사 소리를 매겨가며/ 각기 저정거리고 더부렁거리세/ 이 논배미에다 모를 심어노니/ 장히 펄펄 영화로구나/ 이마 위에 흐르는 땀은 방울방울이 열매 맺고/ 호미 끝에 뒤난 흙은 덩얼 덩얼이 황금이로구나/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어허와 농부들 말 들어요/ 남문전 달 밝은디 순 임금의 놀음이요/ 학창의 푸른데 솔은 산신님의 놀음이요/ 오유월이 당도허면 우리 농부네들 시절이라/ (후략)
2-2. 「모심기소리」-잦은상사소리
(후렴) 여~허~루우~상 사 디여
여~허~루우~ 상 사디여/ 여보소 농부들 말 듣소 어화 농부들 말 들어/ 여기다 놓고 저기다 놓고/ 다 잘 허네 다 달도 허네/ 우리 농군들 다 잘도 허네/ 어떤 사람은 잘도나 심고/ 어떤 사람은 못도나 심네/ 말인즉 그렇제 다 잘도 심네/ 앞산은 점점 멀어지고/ 뒷산은 점점 가까워지네/ 님 오라 한다네 날 오라 한다네/ 산골짝 큰아기 날 오라 한다네/ 청정미 차조밥에 세화젓을 말아놓고/ 둘이 먹자고 날 오라 하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님의 동창에 비춘 달아/ 우리님 홀로 노든가/ 어느 부랑자 품었든가/ 여봐라 본 대로 일러다오/ (후략)
3-1. 「논매기소리」-초벌매는소리
(후렴) 아리시구나 아리시구나 오오 위이
세사는 금삼척이라 생애 주일배 서정강상월이라/ 동각 설중매 다리고 완월장취 놀고 매세/ 불과 같이도 허허이여이히 이히여허/ 불과 같이 나는 볕에 멧과 같이 지슨 골에/ 애 호미는 깔장호미오 그랴 에헤 에 헤/ 내 앞도 못매는디 속 없는 저 머슴은 지골까지 매달라고 하네/ 오날도여 여어어허하도 심심허고 요뇨헌디/ (어 그렇제)/ 허이 허허 적막한 곧에 와겼으니 노랫장씩아 불러보세/ 나주 영산이여 어허허 허 도내기샘에 상추 씻는 저 처녀야 / (어 그렇제)/ 허이 허허 적막한 곳에 와겼으니 노랫장씩이나 불러보세/ (후략)
3-2. 「논매기소리」-두벌매는소리
(후렴) 오오호 호아 헤 에헤헤 헤~루 사 아~ 아아하하 디여
캄캄한 밤은 멀리멀리 사라지고 삼천리 넓은 땅에 새 빛이 밝았구나/ 오뉴월이 당도하니 우리 농부시절 되고 이 강산 이 땅이 우리 농부들 차지로세/ 게으른 두 눈은 아직 멀다 하고 부지런한 두 손은 다 되었다네/ 우리야 농부들 흙속에서 살고 놈이야 한량들 기생 품에서 사네/ 꽃 없는 동산에 나비 간들 뭐하고 임 없는 저 방에 불을 킨들 뭐하리/ 저 건너 외배미 김 매러 가요 저 논을 다 매면 뉘 논을 맬까/ (후략)
3-3. 「논매기소리」-만드리소리
(후렴) 오호~에헤루 사앙사 절로
잘도 허네 잘도 허네 우리 농군님 잘도 허네/ 얼씨구나 절씨구나 얼씨구 절씨구 잘도 허시네/ 불과 같이 더운 날에 매울 같은 지심을 매세/ 이마 위에 흘린 땀방울 방울방울이 보석 같고/ 골무 끝에 묻은 흙덩이 덩어리 덩어리 황금일세/ 풍년일세 풍년일세 우리나라 풍년일세/ 서창들녘에 농부님들 인심도 좋고 인물도 좋다/ 한 더위에 일을 해도 어깨춤에 재미지고/ 손도 맞고 맘도 맞아 흥겨운 노래가 절로 나네/ (후략)
4. 「장원질소리」
(후렴) 아롱 저롱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쥔[주인] 양반 댁으로 어서 가세/ 춤 출 사람은 춤도 추고/ 밥장사는 어디 가고/ 술 가져올 줄 모르냐/ 다 잘 헌다 다 잘 헌다/ 건너라 장구배미/ 물꼬 막으러 내가 간다/ 소도 타고 말도 타고/ 여보소 대문을 열어라/ 노적봉 들쳐나 메고/ 요리 절을 길을 비키소/ (후략)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마을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던 1970년대까지 「서창 들노래」는 농사일의 효율을 높이고 농사일에 지친 농군들에게 활력을 부여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1999년 복원된 이후에는 전통적인 기능보다는 젊은 날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여름철에 휴식을 제공하고, 지역주민들을 단합하게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전승공동체]
「서창 들노래」의 선소리를 맡았던 사람들의 계보는 김성구→ 배삼송→ 박전암 → 문장백→ 선종기, 정종섭→ 이인주→ 배삼곤→ 정영을→ 김용철→ 정병철로 이어지고 있다. 1999년 서창만드리 복원 후 「서창 들노래」를 보존하고 계승해 나가기 위해 주민들과 지자체가 협력해 왔다. 2008년 3월 ‘서창만드리보존회’가 조직되었는데, 발산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서창·중촌마을 사람들을 포함하여 50여 명으로 위원을 구성하게 되었다. 초대 위원장은 김덕수가 맡았으며 이후 윤명규를 거쳐 현재는 정병철이 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등을 50여 명으로 위원을 구성하게 되었다. 서창만드리보존회 정식회원은 아니지만 서창만드리 복원과 기록화에 힘썼던 이종일 문화원장과 민속음악 단체인 ‘소리노리’의 역할도 컸다. 소리노리는 2010년부터 2018년도까지 서창 들노래 앞소리를 맡았던 김용철이 대표로 있는 민속음악 단체이다. 최근에는 마을주민들의 참여율과 음악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 전문 예술인들의 참여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현황]
「서창 들노래」는 서창만드리 축제를 통해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만드리축제를 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전인 2019년까지는 「서창 들노래」를 매개로 지역 축제가 열렸다. 발산마을이 주체가 되어 구민이 다함께 즐기는 축제 한마당을 열었다. 축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마을앞 광장에서 모찌기와 모심기를 재현하며, 벼논에 들어가 김매기를 재현하고, 모형으로 만든 소를 타고 마을로 돌아와서 함께 음식을 나눈다.
[의의와 평가]
「서창 들노래」는 광주광역시의 외곽에 있는 농촌마을에서 전승하는 들노래이다. 전통문화가 단절되기 쉬운 대도시 환경에서 면면히 들노래를 전승하고 있다는 점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복원된 전통문화라는 점이 주목된다. 「서창 들노래」는 영산강 유역 들노래의 음악적 문법을 공유하고 있다. 1999년 복원된 이후 전통적인 레퍼토리가 일부 변경되었지만. 지역민들은 마을의 민요를 보존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