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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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시대부터 개화기 이전까지 전라도 광주 지역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문학 작품.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언어에는 말로 이루어진 음성언어와 글자로 이루어진 문자언어가 있는데, 이에 따라 문학에는 말로 전하여 오는 구비문학과 문자로 전승되는 기록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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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 지역과 관련하여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전라도 광주 지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의 산실이었다. 고전문학 분야에서는 주로 무등산이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되어 무등산을 오르며 지은 한시와 시조, 무등산을 여행하며 쓴 유산기 등이 다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호남 지방의 특성상 누정문학도 광주 문학의 중요한 요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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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공선(公善), 호는 석음(石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의현(朴懿鉉)이며, 할아버지는 박제방(朴濟邦)이다. 아버지는 박양동(朴陽東)이고 어머니는 고제유(高濟儒)의 딸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부인은 안명화(安命和)의 딸 안씨(安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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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의 묘정비. 봉산사묘정비는 봉산사의 묘정(廟庭)에 세운 비이다. 봉산사는 현와 고광선(高光善)[1855~1934]을 모시는 사우(寺宇)이며, 봉산사묘정비에는 봉산사의 건립 취지와 고광선의 공적, 추숭(追崇)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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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와 관계된 글을 모아 1961년에 간행된 사우지. 봉산사(鳳山祠)는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봉황산의 구릉지대에 있는 사당으로 한말 유학자 고광선(高光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고광선은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노사학파(蘆沙學派)의 한 축을 이루며 정의림(鄭義林), 오계수(吳繼洙), 박노술(朴魯述), 오준선(吳駿善) 등과 교류하였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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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박노술이 무등산을 대상으로 쓴 한시. 「서석청운(瑞石晴雲)」을 지은 박노술(朴魯述)[1851~1917]은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호는 석음(石陰)이다. 1851년에 전라도 광주 안청리[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서 아버지 관어헌(觀魚軒) 박양동(朴陽東)과 어머니 장흥고씨(長興高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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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 지역 출생의 근대 학자인 박노술의 시문집.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석음(石陰)이다. 전라도 광주 안청리(安淸里) 출생으로, 안호(安湖) 박제방(朴濟邦)의 손자이자 관어헌(觀魚軒) 박양동(朴陽東)의 아들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시 추앙받은 문학절의(文學節義)로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서 자신이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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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 출신의 근대 학자 이희용의 문집. 이희용(李熙容)[1853~1931]의 자는 국서(國瑞), 호는 쌍석(雙石),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흑석동에서 태어났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에게 수학하였다. 후에 쌍석정(雙石亭)을 세우고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1855~1910], 석음(石陰) 박노술(朴魯述)[1851~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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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속하는 법정동. 안청동(安淸洞)은 전체적으로 푸른 산이 앞뒤로 우거져 있고 옆으로 넓은 벌판이 있어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안청(安淸)이라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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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마을에 세워진 풍천대에 관한 지명유래 전설. 일제 강점기 석음(石陰) 박노술(朴魯述)[1851~1917]이 세운 풍천대(風天臺)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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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사. 용진정사는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1851~1931]이 193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함양시킨 곳이다. 오준선은 현재의 광산구 도덕동 도림마을에서 오하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백부 오향규에게 입양되었다. 8세 때부터 이웃에 사는 친척 오태규로부터 사서와 근사록을 배웠고, 18세 때에는 노사 기정진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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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이 세운 전통 가옥. 박노술(朴魯述)의 호는 석음(石陰)이며,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 이후 기우만(奇宇萬)이 일으킨 의병부대에 참여하였으나,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전라남도 광주군 흑석면[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 계안마을에 율리전사(栗里田舍)를 세워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계안마을에는 유림 제자 700명으로 구성된 문생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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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1990년에 건립된 사당. 일성재(日省齋)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일대에 하남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토지보상금을 받게 된 박노열(朴魯烈)이 일본에 있는 맏아들 박민규와 일성계(日省契) 계원들의 협조를 받아 1990년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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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의 광복을 염원하는 글을 새긴 석대. 풍천대(風泉臺)는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항일 의적(義蹟)을 기념하는 삼층 석대(石臺)이다. 박노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서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항일의식 각성을 촉구하였고, 1917년 6월 광주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