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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영당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533
한자 鳳山影堂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61년 - 『봉산영당지』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61년연표보기 - 『봉산영당지』 간행
성격 사우지
편자 박하형|최윤환
간행자 박하형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에 있는 봉산사와 관계된 글을 모아 1961년에 간행된 사우지.

[개설]

봉산사(鳳山祠)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봉황산의 구릉지대에 있는 사당으로 한말 유학자 고광선(高光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고광선은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노사학파(蘆沙學派)의 한 축을 이루며 정의림(鄭義林), 오계수(吳繼洙), 박노술(朴魯述), 오준선(吳駿善) 등과 교류하였다. 또한, 나도규(羅燾圭), 최익현(崔益鉉) 등에게 편지를 보내 뜻을 같이하였다.

고광선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봉황산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봉산사는 1906년에 지역 유림들과 고광선의 제자들이 건립하였다. 봉산사 경내에는 사당, 봉산사묘정비(鳳山祠廟庭碑), 추모제 유허비, 상의문 등이 있다. 부속 건물로는 엄이재(掩耳齋)가 있는데, 나라가 망해 가는 것이 원통하여 귀를 막고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는 장흥고씨(長興髙氏)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봉산영당지(鳳山影堂誌)』고광선의 영당(影堂)인 봉산사와 관계된 글을 모은 사우지(祠宇誌)이다.

[편찬/간행 경위]

『봉산영당지』봉산사와 관계된 글을 모아 최윤환(崔允煥)과 고광선 문집 편찬을 주도하였던 박하형(朴夏炯)이 1961년에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봉산영당지』는 3권 1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되었다.

[구성/내용]

『봉산영당지(鳳山影堂誌)』는 서문, 본문 3권,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최윤환, 발문은 오병일(吳炳鎰)과 고광선의 조카인 고재정(高在廷)이 썼다. 권 1에는 사적, 「장산서실기(丈山書室記)」, 「현와기(弦窩記)」, 「엄이재기(掩耳齋記)」, 「봉산정사건축기(鳳山精舍建築記)」, 「봉산영당상량문(鳳山影堂上梁文)」 등과 같은 봉산영당 관련 사실이 적힌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권 2에는 「읍궁암운(泣弓巖韻)」, 「엄이재제영(掩耳齋題詠)」, 「엄이재십영(掩耳齋十詠)」, 「봉산정사차운(鳳山精舍次韻)」 등 봉산영당 관련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 3에는 문인록이 있다.

[의의와 평가]

『봉산영당지』봉산영당의 건립과 활동 사항을 알 수 있는 자료이자, 한말 전라남도 광주 지역 문인들의 활동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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