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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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須 |
영어공식명칭 | Kim Soo |
이칭/별칭 | 참정부군(叅政府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문다성 |
[정의]
고려 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지영광군사, 영암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가계]
김수(金須)[?~1270]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사공(司空) 김길(金吉)의 후손이며 김양감(金良鑑)의 5대손이다. 아들은 신호위녹사참군(神虎衛錄事叅軍) 김태일(金台一)과 중찬공(中贊公) 김태현(金台鉉)이다. 김수의 처 고씨(高氏)[1226~1327]는 고영중(高塋中)[1133~1208]의 손녀로, 옥구군대부인(沃溝郡大夫人)으로 추봉되었다.
[활동 사항]
김수는 담력과 지략이 뛰어났다. 1255년(고종 42)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어사(御史)로서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로 출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영암부사(靈巖副使)로 보임(補任)되었다가 안찰사(按察使) 권단(權㫜)의 명령에 따라 병사 200명을 이끌고 제주도를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김수는 1270년 장군 고여림(高汝霖)과 함께 제주도에서 삼별초의 공격에 맞서다 전사하였다. 「김수처고씨묘지명(金須妻高氏墓誌銘)」에 일찍이 김수는 칙서를 받들어 서해도(西海道)[현재의 황해도 지역] 금미장(今彌莊)을 감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상훈과 추모]
1271년(원종 12) 4월에 영광부사(靈光副使) 김수(金須)의 충절을 표장하기 위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추증하고 김수의 부인에게 쌀 10곡(斛)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