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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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氏三綱門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뫼안길 13[박호동 3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한백 |
건립 시기/일시 | 1635년 - 양씨삼강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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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2월 25일 - 양씨삼강문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 지정 |
현 소재지 | 양씨삼강문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뫼안길 13[박호동 358] |
성격 | 정려문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문.
[개설]
양씨삼강문은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입구에 있다. 박뫼마을은 양산숙(梁山璹)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양산숙과 양산숙의 어머니인 죽산박씨(竹山朴氏), 형인 양산룡(梁山龍)[1552~1597], 아우인 양산수(梁山岫), 누이이자 김광운(金光運)의 부인인 제주양씨(濟州梁氏), 양산숙의 부인인 광산이씨(光山李氏) 6명의 충(忠), 효(孝), 열(烈)을 기리는 정려문이다. 양산숙은 형인 양산룡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金千鎰)[1537~1593] 휘하에 참여하여 여러 전공을 세우다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후 왜군이 전라도 지역으로 침입하자, 양산룡은 어머니와 아우, 누이와 피난을 가다가 현재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지역인 삼양포(三洋浦)에서 왜적을 만나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광산이씨는 현재의 전라남도 무안군의 승달산에서 왜적을 만나 저항하다가 자결하였다. 1803년(순조 3)에 이헌중(李憲中)이 '梁氏三綱門(양씨삼강문)' 현판을 작성하였다. 1985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뫼안길 13[박호동 358] 박뫼마을 입구에 있다.
[변천]
양씨삼강문은 1635년 건립되었다.
[형태]
건물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이다. 각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았다.
[현황]
양씨삼강문은 건물 내부에 '정문중수찬(旌門重修贊)'과 '양씨삼강정문중수기(梁氏三綱旌門重修記)' 등 7개의 현판이 있다.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1985년 2월 25일에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양씨삼강문에서는 임진왜란 때 광주 지역의 모습과 충, 효, 열을 강조한 조선 후기 사회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