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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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正字宋公遺稿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지민 |
편찬 시기/일시 | 1573년 - 『정자송공유고』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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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573년 - 『정자송공유고』 간행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소장처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연희동 25]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490-8] |
소장처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명륜3가 53-21] |
소장처 |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 |
성격 | 시문집 |
저자 | 송정황 |
편자 | 송재학 |
간행자 | 송재학 |
권책 | 3권 1책 |
행자 | 9행 19자 |
규격 | 28.5×18.5㎝[전체 크기]|20.7×14.9㎝[반곽] |
어미 |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
[정의]
조선 중기 성리학자 송정황의 시문집.
[저자]
송정황(宋庭篁)[1532~1557]은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천경(天擎)이다. 김인후(金麟厚)의 문인이며, 1545년에 향시에서 장원을 하였으며, 1555년(명종 10)에 사마시에서 일등으로 합격하였다. 1556년 별시에 합격하여 괴원(槐院)에 발탁되었으나, 윤원형(尹元衡)의 미움을 받아 교서(校書)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문란한 정치상황 아래에서 교서의 임무를 올바로 수행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고사하였다. 이 후 송정황은 1557년에 기대승의 뜻을 받들어 주서(朱書) 가운데 긴요한 곳만을 초출(抄出)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을 편저하고, 또 이 책의 발문(跋文)도 직접 쓰기도 하였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정자송공유고(正字宋公遺稿)』는 1573년에 후손 송재학(宋在鶴)이 편집·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정자송공유고』는 3권 1책의 목활자본(木活字本)이다.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전체 크기는 28.5×18.5㎝, 반곽(半郭) 20.5⨯14.4㎝, 계선이 있다. 행자수는 9행 19자, 어미는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전남대학교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정자송공유고』는 권두에 고재붕(高在鵬)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송시열(宋時烈)의 후서와 홍기섭(洪耆燮)의 발문 및 송재학의 추발(追跋)이 있다. 권1에 시 3수, 부(賦) 3수, 발(跋) 1편, 권2와 권3에 부록으로 만시·세계원류(世系源流)·실록·행장·유사·만사·우유당실기(優遊堂實記)·묘갈명·수옹실적(瘦翁實績)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주자문록(朱子文錄)』의 편저자인 송정황의 학식과 인격을 살필 수 있는 시(詩)나 부(賦) 등이 실린 『정자송공유고』는 호남 성리학자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참고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