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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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由勞動組合 |
영어공식명칭 | Free Labour Un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손영님 |
[정의]
1926년 4월 광주광역시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노동 단체.
[개설]
1920년대 광주의 노동운동은 광주청년회와 노동공제회의 갈등이 있었으나 직업별 조합의 결성 움직임은 활발해졌다. 광주청년회의 주도로 광주인쇄직공조합, 광주철공조합, 완차부조합, 정미노동조합 등이 출범하였다.
[설립 목적]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경제적 해방을 목표로 조직되었다.
[변천]
자유노동조합은 1926년 4월 노명석, 최준영 등이 발의하여 조합원 170여 명으로 조직되었다. 자유노동조합위원회를 개최하고 조합원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발회식을 준비했으며, 준비위원으로는 김기홍, 윤성옥, 백윤옥, 유응렬, 임석홍, 박흥옥, 김방순, 이원중, 김철, 김명규, 정태영, 김성옥, 하상태가 참여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자유노동조합은 서무, 교양, 조사, 구호 등을 부서로 두었다. 전라남도의 담양, 함평, 영광, 강진, 영산포 등에서도 자유노동조합은 조직되었다. 담양자유노동조합은 그 가입대상을 각 직업별 조합에 참가한 회원이 아닌 자, 30원 이하 월급으로 생활하는 자, 노동운동에 종사하는 자 또는 실업자로 명확히 규정하였다.
강진의 병영자유노동조합은 노동야학 운영을 통해 청소년들의 의식화 활동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영산포자유노동조합은 노동자 차별 철폐, 8시간 노동, 최저임금 실시, 노동자 교육을 위한 독본의 구독, 직업별 노동단체 조직 등의 활동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자유노동조합은 노동자만의 조직으로서 지역에 따라 정체성을 뚜렷이 하였다,
[현황]
1920년대 광주 지역을 포함해 전남 지역의 노동운동은 각종 직업별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적은 노동자의 수, 일제의 치밀한 탄압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일제는 자유노동조합이 계급투쟁을 목적으로 조직되어 불온하다는 이유로 해산명령을 내리거나 사회주의자들과의 관계 여부를 조사하고 조합의 간판을 떼어가는 등 온갖 명목으로 활동을 방해하였다. 이처럼 자유노동조합이 합법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활동은 점차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