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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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禮蒙 |
영어공식명칭 | Kim Ye-mong |
이칭/별칭 | 경보(敬甫),문경(文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창우 |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집현전정자,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김예몽(金禮蒙)[1406~1469]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할아버지는 김화(金華), 아버지는 사성(司成) 김소(金遡), 어머니는 조신우(趙臣佑)의 딸이다.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역임한 희정공(僖靖公) 김청(金聽)의 조카이다. 부인은 조육안(曹陸安)의 딸이며, 김예몽은 조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김덕원(金德源)과 김성원(金性源)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활동 사항]
김예몽은 1406년(태종 6) 광주 지역에서 태어났다. 1429년(세종 11) 생원에 입격하였고, 1432년(세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저작(集賢殿著作)에 보임됨으로써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예종실록(睿宗實錄)』에 실려 있는 김예몽의 졸기(卒記)에 따르면 김예몽은 온아(溫雅)하며 청수(淸修)한 성품을 가졌고, 사리가 밝고 학문을 좋아하여 글에 매우 능통하였다고 한다.
김예몽은 1440년(세종 22) 서장관 부사직(書狀官副司直)으로서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왔고, 1445년(세종 27)에 간행된 의학서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과 고려 시대의 역사서 『고려사(高麗史)』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그 후 사헌부집의,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등의 관직을 거쳤고, 홍주목사(洪州牧使)·강원목사(江原牧使) 등에 발탁되어 외직 생활도 경험하였다. 1460년(세조 5)에는 사은사가 되어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468년(세조 14)에는 공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인 1469년(예종 1)에 사망하였다. 김예몽의 부음 소식을 듣고 왕이 애통해하며 예부에 별도의 부의를 내리도록 명하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모두 ‘철인(哲人)’이 죽었다고 통곡하였다.
[묘소]
김예몽의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다. 묘 인근에 김예몽의 신도비도 함께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