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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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 |
영어공식명칭 | Kim Hanui |
이칭/별칭 | 김종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찬모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의 시인.
[개설]
김하늬[1957~1999]는 1957년 8월 27일 전라남도 광산군 동곡면[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종기이다. 광주서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총회신학대학 목회과에서 수학하였다. 1970~1980년대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발하게 동인 활동을 전개하고, 『우리는 만나야 한다』 등의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다.
[활동 사항]
1979년 현대문화사에서 발간한 첫 시집 『우리는 만나야 한다』로 문병란, 김준태의 호평을 받으며 전라남도 광주 시단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1982년 4월 5.18민주화운동 2주기를 앞두고 '문학의 밤' 행사를 준비하던 중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광주교도소 수감 중에는 박관현, 기종도, 조봉훈, 신영일, 임낙평 등과 함께 교도소 측의 반인권적 처우에 저항하여 단식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김하늬는 1985년 『시문학』과 『민의』 3집에 「밥」 등의 시를 발표한 후 김해화, 김기홍, 오봉옥 등과 함께 '해방시'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89년에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 문학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홍인표, 박승배, 정윤천, 한상원, 강환식 등 10여 명의 회원과 함께 '공동문학회'를 창립하여 소설가 박혜강과 함께 공동 대표를 맡아 활동하였다. 1999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당한 모진 고문과 2년 동안의 수감 생활에서 얻은 만성간염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하늬는 첫 시집 『우리는 만나야 한다』를 발간한 이후 1980년 『안개주의보』[호남문화사], 1981년 『오후의 외출』[현대문화사], 1986년 『하늬바람』[사사연], 1988년 『흥부타령』[오상사] 등의 시집을 펴냈다. '해방시' 동인으로 1986년 동인지 『아, 그날의 꽃잎처럼』[사사연] 발간에 참여하였으며, 송수권·박주관·나해철 등 광주와 전라남도의 시인 14명과 함께 신작시를 모은 시집 『벌거숭이』[사사연]를 1987년에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