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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오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440
영어공식명칭 Advancing May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작|발표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전진하는 오월」 창작
성격 민중가요
양식 행진곡풍
작곡가 김경주|박태홍
작사자 고규태

[정의]

고규태 시인의 가사에 화가 김경주와 박태홍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

[개설]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 출신 박태홍은 박문옥, 최준호와 중창단을 만들어 1976년 전남대학교 캠퍼스송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고, 1977년에는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 실력자이다. 1983년 교사를 그만두고 전라남도 광주로 돌아온 박태홍은 화가 김경주와 큰나무미술학원을 경영하였다. 1983년 어느 날, 학원을 방문한 후배 고규태가 몇 편의 시를 내놓으며 노래 작곡을 부탁하였다. 김경주는 「전진하는 오월」을 선택하고 박태홍은 「금남로 사랑」과 작자 미상인 「광주시민 장송곡」을 선택해 작곡을 시작하였다. 김경주는 행진곡풍으로 「전진하는 오월」을 작곡하다가 막혔다. 「노래2」와 같은 서정적인 곡을 작곡하는 김경주에게 행진곡풍의 작곡은 어색하였다. 김경주는 박태홍에게 곡의 마무리를 부탁하였고, 박태홍은 「전진하는 오월」을 완성하였다.

[공연 상황]

1984년에 전남대학교의 총학생회가 부활되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도 많아졌다.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많이 불리던 「전진하는 오월」이 총학생회가로 지정되면서 학내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이미 전남대학교의 시위에서 많이 부르던 「전진하는 오월」은 1985년에 제작된 노래극 「광주여! 오월이여」의 마지막 곡으로 실렸다. 「전진하는 오월」은 다른 행진곡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느리고 장엄하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구성]

네 도막 형식, 가단조 구성의 노래이다.

[내용]

「전진하는 오월」의 가사

1.

저기 오네 젊은 넋들 들판 가로질러

밝은 노래 해방 노래 높이 부르며

투쟁의 깃발 들고 힘차게 달려오네

눈부신 무진주 들판 가로질러

동트는 꽃새벽 무쇠나팔 소리 따라

진달래 붉은 가슴 여기 달려오네

물러서지 않으리 사슬 끊고 전진하는

오월 오늘은 물러서지 않으리

2.

앞서 가네 오월 형제 사선 끝내 뚫고

불을 뿜는 짐승 총칼 맞서 싸우며

민주의 횃불 들고 물밀 듯 달려오네

피맺힌 금남로 사선 끝내 뚫고

캄캄한 한밤중 진군하는 함성 따라

시민군 넋과 함께 여기 달려오네

물러서지 않으리 사슬 끊고 전진하는

오월 오늘은 물러서지 않으리

[의의와 평가]

1983년 전라남도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의 후유증으로 아파하고 있었으며, 움츠림 속에서도 진상 규명을 모색하던 때였다. 진상 규명 방법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은 그림, 노래, 시 등으로 다양한 문화 운동을 전개했고, 예술가들 가운데 시인 고규태도 있었다. 노래 「전진하는 오월」은 문학도인 고규태가 전개한 문화 운동의 산물이다. 광주에게 1980년 5월은 패배였으나, 시인은 "오월 오늘은 물러서지 않으리라."라고 절규한다. 김경주, 박태홍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전진하는 오월」은 노래의 가사대로 앞장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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