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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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유하 |
창작|발표 시기/일시 | 1984년 10월 30일 - 『예향의 젊은 선율』 창작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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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단체 | 대성음반 - 서울특별시 은평구 서오릉로 56[녹번동 80-10] |
성격 | 옴니버스 |
작곡가 | 김종률|박문옥|김정식|배창희|정병구 |
작사자 | 김종률|박문옥|김정식|배창희|정병구 |
감독(연출자) | 이동락 |
연주자(가수) | 김종률|신상균|김정식|소리모아|김원중|신상균 |
[정의]
198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활동하던 젊은 통기타 가수들이 모여 기획·제작한 옴니버스 음반.
[개설]
전라남도 광주 사직공원 초입에 있는 크라운광장은 젊은 통기타 가수와 애호가들이 모여서 노래하는 아지트였다. 이곳에서 신상균[통기타 가수, 조선대학교 건축과 출신]은 박문옥, 김원중 등 다수의 가수들을 만났다. 노래를 잘하던 신상균은 친구 이동락의 후원 아래 독집 레코드를 계획하던 중 박문옥과 상의하여 옴니버스 음반 제작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여러 차례의 음반 기획 회의 결과 음반 참여 가수는 신상균과 제1회 MBC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 소리모아[박문옥, 박태홍, 최준호로 모두 미술 교사 출신], 제2회 MBC대학가요제와 6회 MBC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동상과 은상을 수상한 김정식, 제3회 MBC대학가요제[은상]와 전일방송대학가요제[대상]에서 입상한 김종률, 전남대학교 합창단과 락그룹 로터스 출신 김원중으로 결정되었다. 당시는 레코드 회사에서 모든 과정을 주도하여 음반을 발매하던 시기였지만, 이 음반은 광주 출신의 가수들이 직접 창작·노래·기획을 하였다. 음반의 제목은 『예향의 젊은 선율』로 정하였다.
[공연 상황]
『예향의 젊은 선율』 음반은 주로 가수들이 자작곡의 노래로 참여하였으나, 배창희와 정병구는 창작자로 참여하였다. 완성된 음반의 홍보는 제작자 이동락이 직접 맡았고, 녹음은 대성음반의 녹음실에서 진행되었다.
[구성]
『예향의 젊은선율』 음반 기획은 예림, 연출은 이동락, 편곡은 유영선이 하였으며, 녹음은 박영호, 디자인은 백정환·윤종남, 사진은 안봉주가 찍었다. 음반 제작은 주식회사 대성음반이 하였다.
『예향의 젊은선율』에 수록된 노래는 총 12곡으로, 1면과 2면에 수록된 노래는 각각 다음과 같다.
1면
1. 「내 사랑」: 김종률 노래[김종률 작사·작곡]
2. 「먼 길」: 신상균 노래[박문옥 작사·작곡]
3. 「갈매기의 꿈」: 김정식 노래[김정식 작사·작곡]
4. 「시냇가에서」 : 소리모아 노래[박문옥 작사·작곡]
5. 「우리 서로 헤어질 때」: 김정식 노래[김정식 작사·작곡]
6. 「똑딱선」: 소리모아 노래[박문옥 작사·작곡]
2면
1. 「바위섬」: 김원중 노래[배창희 작사·작곡]
2. 「무등산 친구」: 김종률 노래[김종률 작사·작곡]
3. 「사랑은 강물처럼」: 소리모아 노래[박문옥 작사·작곡]
4. 「작은 어부」: 신상균 노래[배창희 작사·작곡]
5. 「목공의 노래:」 김원중 노래[정병구 작사·작곡]
6. 「너와 내가」 [건전가요]
[내용]
『예향의 젊은 선율』에 실린 노래는 음반에 실린 적은 없지만 젊은 통기타 가수들이 이전에 작곡하여 불렀거나 음반을 위해서 새롭게 창작한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록된 노래 중 「바위섬」은 조선대학교 합창반과 전남대학교 합창반에서 이미 부르고 있었던 노래였다. 김원중이 배창희에게 「바위섬」을 자신의 노래로 음반에 실을 것을 제안하였고 배창희는 기꺼이 수락하였다. 김종률은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동료와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무등산 친구」를 작곡하였다.
『예향의 젊은 선율』에 수록된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 「내 사랑」: 내 사랑 내 가슴 속에/ 그대 깊이 넣고 싶어/ 외로운 길에도 함께 걸으리/ 내 사랑 내 두 눈 속에/ 그대 깊이 넣고 싶어/ 캄캄한 밤에도 놓지 않으리/ 한적한 바닷가 걸을 때도/ 소라의 노래도 소낙비 내리는 들길에도/ 내 곁에 있으리
2. 「먼 길」: 너무 춥고도 먼 길을/ 우리 손잡고 걸었었지/ 산비탈 눈 쌓인 겨울 밤 한겨울 밤/ 시린 다섯 손가락을/ 호호 입김 불며 왔었지/ 차가운 바람 소리 귀를 찢는 한겨울 밤/ 이젠 저 불 켜진 아늑한/ 마을에서 따뜻한 한잔에/ 녹여나 볼까나/ 그대여 새벽에 단잠을 깨어/ 골짜기 흐르는 시냇물로/ 우리의 아침을 맛있게 지어 볼까/ 당신의 달콤한 입맞춤에/ 꽃들이 만발한 그 봄날/ 하늘을 나는 새처럼 살아 볼까
3. 「갈매기의 꿈」: 겨울바람이 스쳐 간 쓸쓸한 섬마루에/ 하얀 갈매기 꿈을 접었네/ 오늘이 지나면 또 아침이 오겠지/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더 멀리 보려면 더 높이 날아야 해/ 파란 내일을 향해 고단한 날개에 꿈을 싣고서 끝없이 나네/ 이젠 나도 먼 길을 떠나고 싶어/ 높이 나는 갈매기처럼/ 거칠고 험한 파도를 이겨 내면서/ 갈매기의 꿈을 따라/ 나도 먼 길을 떠나고 싶어/ 높이 나는 갈매기처럼/ 거칠고 험한 파도를 이겨 내면서/ 갈매기의 꿈을 따라
4. 「시냇가에서」: 풍뎅이 날아다니는 어린 시절 한여름에/ 우리는 새까만 발가숭이/ 모든 게 꿈속 같았죠/ 양손에 고무신 들고 온종일 냇가에 서서/ 각시붕어 꽃피리는/ 하나 못 잡고 송사리만 겨우 잡았죠/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인 어린 시절 시냇가/ 이제는 나도 변해/ 세파에 찌든 꿈 없는 한 나그네/ 그 무엇이 너와 나를 지금까지 데려와/ 다시는 다시는 이제 다시는/ 다시는 못 가게 하나
[2절 생략]
5. 「우리 서로 헤어질 때」: 우리 서로 헤어질 때/ 슬프게 웃음 짓지 말아요/ 처음 만났을 때처럼/ 포근하고 따스하게 안녕해요/ 처음은 눈끝을 가지고 있고/ 끝은 또 새로운 처음이듯이/ 만남은 늘 헤어짐을 마련하고 있고/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을 말해 줘요/ 그러니 우리 서로 헤어질 때/ 슬프게 웃음 짓지 말아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형제의 볼에 입 맞추며 안녕 안녕/ 안녕 안녕하고 속삭여요
6. 「똑딱선」: 아 떠나가는 저 배 아 슬픔 어린 저 배/ 아 멀어지는 저 배 아 님을 실은 저 배/ 요즘은 하루에도 서울을 열두 번씩/ 세계를 한두 바퀴 왔다 갔다 하는 세상/ 까짓거 똑딱선이 부두에서 떠난다고/ 뭐가 슬퍼 뭐가 슬퍼/ 요즘은 하루에도 서울을 열두 번씩/ 세계를 한두 바퀴 왔다 갔다 하는 세상/ 까짓거 똑딱선이 부두에서 떠난다고/ 뭐가 슬퍼 뭐가 슬퍼/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슬픈걸/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슬픈걸
7. 「바위섬」: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8. 「무등산 친구」: 무등산 친구 무등산 친구 참 좋은 친구야/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는 그대 내 사랑 아아/ 그대는 가리 가야만 하리 저 거친 세상길/ 두 손 꼭 잡고 내일을 향해 가야만 하리 아아/ 그대를 밤낮없이 잘 아는 이름 무등산 친구 무등산 친구/ 하늘로 향해 뻗은 희망의 노래 무등산 친구 무등산 친구/ 무등산 친구 우우우 우우우/ 무등산 친구 무등산 친구 참 좋은 친구야/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는 그대 내 사랑 아아/ 그대 내 사랑 아아
9. 「사랑은 강물처럼」: 바람 바람처럼 내게 다가와/ 구름 구름처럼 나를 감싸고/ 이젠 어디론가 떠나가 버린/ 그대 그대는 강물인가요/ 하늘 하늘가에 곱게 물든/ 노을 노을처럼 아름답던 너낙엽 낙엽처럼 멀리 떠나간/ 사랑 사랑은 강물인가요/ 아- 아름다운 사랑이/ 눈물 어린 사랑하지만 그대는/ 아직도 나에게 눈부신 햇살이어라/ 사랑은 타오르는 애틋한 느낌만으로는/ 영원할 수 없어요/ 가슴이 매어지는 슬픔까지 모두/ 참아 내야 되는 것 그대는 철모르는/ 아이처럼 그렇게 그냥 쉽게 사랑하지만/ 한 송이 노란 꽃을 피우려는 나의 기나긴 아픔을/ 바람 구름 낙엽 사랑/ 사랑은 강물인가요
10. 「작은 어부」: 배를 띄워 노 저어라 넓은 바다 향해/ 하늘과 영혼이 맞닿는 곳 수평선 너머/ 그물 던지어 올리세 나는 작은 어부/ 어기야 어기야 노를 저어라/ 바다가 넓으면 얼마나 넓으랴/ 어 어허어야/ 이내 몸이 다 하도록 노를 저어라
11. 「목공의 노래」: 김포평야 너른 들을 한길로 달려/ 희뿌연 먼지 뿌려 전등사 내려/ 오매불망 가자 하던 여인네들아/ 통곡하며 애원하던 그를 아는가/ 지나는 바람결에 들리는 전설은/ 한 맺힌 목공의 서글픈 사연/ 돌며 흐르는 세월 속에/ 오늘이 가고 긴긴밤 새고 나며/ 내일이 오늘인가/ 통곡하며 애원하던 그를 아는가/ 지나는 바람결에 들리는 전설은/ 한 맺힌 목공의 서글픈 사연/ 한 맺힌 나녀상 조각되었나
[의의와 평가]
1977년부터 시작된 대학가요제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중앙 진출이 어려웠던 전라남도 광주의 젊은 가수들에게 『예향의 젊은 선율』 음반 제작 시도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예향의 젊은 선율』이 발매되고 김원중의 「바위섬」은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또 음반 제작의 경험은 지역의 녹음 시설에 대한 결핍을 절감하는 기회가 되어 광주에 소리모아 스튜디오와 같은 녹음실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다. 광주 대중음악 발전의 구체적인 노력과 결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향의 젊은 선율』의 제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