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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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碧津書院賜祭文 |
이칭/별칭 | 의열사 사제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송풍로 42[풍암동 76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현 소장처 | 벽진서원 - 광주광역시 서구 송풍로 42[풍암동 7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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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현판 |
재질 | 나무 |
소유자 | 음성박씨 정승공파 종친회 |
관리자 | 음성박씨 정승공파 종친회장 |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벽진서원에 있는 벽진사를 의열사 사액 시 사제문을 새긴 현판.
[개설]
벽진서원 사제문은 전라도 광주 벽진사(碧津祠)를 의열사(義烈祠)로 사액(祠額)하면서 1681년(숙종 7) 4월 24일에 숙종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으로, 강당인 숭본당(崇本堂)에 있다. 벽진서원 사제문은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이 지었는데 사제문의 연호와 간지 연월일의 세차를 앞에 쓰고, 앞부분에서 박광옥(朴光玉)[1526~1593]의 학문과 의병 활동을 찬미(讚美)하였다. 이어서 김덕령의 의병 활동과 참언에 의한 피해, 신원에 관한 내용, 사액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존경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사제문은 1787년(정조 11)에 새겨져 1785년(정조 9) 김덕령(金德齡)[1567~1596]에게 충장의 시호를 내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액자 형식 판재에 27행을 내려쓰기로 음각하였다. 변죽은 별다른 조식(彫飾)을 하지 않았다.
[특징]
벽진서원 사제문은 조선시대 사우를 사액하면서 치제(致齋)할 때 국왕이 내린 사제문을 새긴 현판으로, 제향 세차 연월일과 파견 제관, 제문, 게판 연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사제(賜祭), 국왕(國王), 현묘(顯廟)[현종] 등 임금을 상징하는 용어는 대두(擡頭)하여 줄을 바꾸고 한 글자씩 올려 써 당시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현황]
벽진서원은 1602년(선조 35) 벽진사로 창건하여 회재 박광옥을 배향하였고, 1678년(숙종 4) 김덕령을 합향하고 1681년(숙종 7) 의열사로 사액되었으며, 후에 오두인, 김덕보, 김덕홍을 추배하였다. 벽진사는 서원 훼철령으로 헐렸다가 1927년에 박광옥의 영정을 봉안하여 운리영당(雲裏影堂)이라고 하였다가 2018년 벽진서원이라 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에 벽진사를 의열사로 사액할 당시의 사제문으로, 사제문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는 점과 제문 지은이의 문집에서도 사제문이 확인되고 있어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