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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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麻珍良縣 |
영어공식명칭 | MaJillyang-hyun |
이칭/별칭 | 마미량현(麻彌良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방용철 |
[정의]
삼국 시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에 설치되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마진량현[혹은 마미량현(麻彌良縣)]은 본래 압량국(押梁國)[혹은 압독국(押督國)]의 일부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지미왕(祗味王)[재위 112~134]이 정벌하였고, 후에 압량군[혹은 압독군]의 영현(領縣)으로 설치했다고 한다. 757년(경덕왕 16) 여량현(餘糧縣)으로 개칭되었다. 마진량현은 지금의 경산시 진량읍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마진량현은 사로국(斯盧國)이 신라(新羅)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지방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구역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4 지리지1 양주(良州)조에는 장산군(獐山郡)의 영현 중 하나로 여량현을 소개하면서 “여량현은 본래 마진량현[혹은 마미량현]이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고려]의 구사부곡(仇史部曲)이다.”라고 하였다. 구사부곡에 대해서는 『여지도서(輿地圖書)』 경상도 경주(慶州) 건치연혁(建置沿草)조에는 “신라의 마진량현[혹은 마미량현]인데, 경덕왕이 여량현으로 고치고 장산군에 속하도록 하였다. 후에 [견훤군에] 항복하였으므로 부곡으로 삼았다가 지금[조선]의 이름으로 고쳤다. 효종(孝宗) 계사년(1653)에 자인현(慈仁縣)에 옮겨 속하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2세기 초반 지미왕이 압량국[혹은 압독국]을 정벌하여 군(郡) 설치할 때, 처음으로 현(縣)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마진량현이 설치된 시기는 6세기 이후 신라 시대로 추정된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따르면 4~5세기 무렵까지도 경산 지역에 독립적인 세력이 존재하였고, 신라에 군현이 나타나는 것은 6세기 중·후반 이후이기 때문이다.
[변천]
마진량현은 757년 여량현으로 개칭하고, 장산군(獐山郡)에 영속하였다. 940년(태조 23)에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강등되었다가 1018년(현종 9) 경주(慶州)에 영속되었다. 1653년(효종 4)에 자인현으로 이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마진량현의 설치와 변천은 삼한시대 사로국의 주변 소국 병합 양상과 신라 초기의 지방 지배방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