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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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山 林堂洞-造永洞 古墳群 |
영어공식명칭 | Ancient Tombs in Imdang-dong and Joyeong-dong Gyeongsan |
이칭/별칭 | 임당동 고분군,조영동 고분군,부적리 고분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676-1|조영동 556|압량읍 부적리 33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장호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2년 1월 15일 - 임당동 2호분 도굴 적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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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2년 7월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2년 12월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영남대학교 박물관 발굴 조사 종료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2월 3일 - 경산 임당동 고분군 사적 제30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9년 8월 21일 - 경산 조영동 고분군 사적 제331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7월 28일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사적 제516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6월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BⅥ호분 세종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10월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BⅥ호분 세종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 종료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5월 28일 - 부적리 고분군 사적 제516호 추가 지정 |
소재지 |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676-1 |조영동 556|압량읍 부적리 331 |
모형 전시처 | 임당유물전시관 -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676-1 |
출토 유물 소장처 | 경산시립박물관 - 경상북도 경산시 박물관로 46[사동 655-1]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출토 유물 소장처 | 영남대학교 박물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조영동 321] |
성격 | 고분군 |
관리자 | 문화재청|경산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제516호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조영동 및 압량읍 부적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개설]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사적 제516호로 지정된 삼국 시대 고분군이다. 본래 경산 임당동 고분군은 사적 제300호, 경산 조영동 고분군은 사적 제331호였으나, 2011년 7월 28일에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으로 재지정하였다. 2018년 5월 28일에는 인근의 부적리 고분군이 추가 지정되었다. 내부 구조는 대체로 청석인 기반암(基盤巖)을 파고 안에 목곽(木槨)을 안치한 덧널무덤이며, 돌무지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돌덧널무덤, 독널무덤 등도 다수 확인되었다.
[위치]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금호강의 지류인 오목천과 남천 사이에 형성된 해발 50~70m 정도의 얕은 구릉에 입지하고 있다. 가장 서쪽에 남북으로 말안장처럼 뻗은 구릉 정상에 자리 잡은 임당토성(林堂土城)을 중심으로, 남서쪽에 임당동 고분군이 분포하며, 북동쪽으로 구릉을 달리하여 조영동 고분군과 부적리 고분군이 분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1918년에 압량읍 대동·조영동 고분군으로 알려졌지만, 해방 후까지도 학계의 관심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1982년 1월 15일, 임당동 2호분이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 및 장신구, 은제 허리띠, 곱은옥, 둥근 고리 큰 칼 등 중요한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당국에 적발되며 임당동 고분군의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82년 7월부터 12월까지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제일 먼저 발굴된 고분은 2호분이다. 2호분의 봉토는 3분의 1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으나, 4분법으로 조사하였다. 봉토는 얇은 널돌로 된 청석을 정성스럽게 차곡차곡 둥글게 쌓았고, 바닥 부분은 일부 흙으로 다지고 회를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2개의 무덤을 남북으로 함께 붙여 만든 표형분(瓢形墳)으로, 남쪽에 있는 무덤이 먼저 만들어지고, 북쪽에 있는 무덤이 뒤에 만들어졌다. 1개의 무덤은 주곽과 부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곽의 뚜껑은 큰 화강암 편평석을 사용하였고, 부곽은 나무로 뚜껑을 하였다.
2호분 발굴 이후 비교·조사를 위해 5·6·7호분을 차례로 발굴하였다. 봉토는 2호분과 같은 방법으로 축조되었는데, 봉토가 2개 또는 3개로 연결되어 있는 다곽식이다. 모두 15개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5·6·7호분 주위에는 원형 또는 반원형으로 둘레돌이 돌려져 있었다. 임당동 출토 유물과 무덤의 구조는 경주 지역 초기 무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식이며, 가야 문화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 신라와 가야 사이의 문화 교류 양상을 보여준다.
부적리 고분군의 경우, 2016년 6월부터 10월까지 세종문화재연구원에서 BⅥ호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6세기 전반을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주곽과 부곽을 갖춘 돌무지덧널무덤이다. 주변에서 확인되는 대형 봉토분도 발굴 조사에서 밝혀진 매장 주체부와 동일할 것으로 파악된다. 발굴 조사 결과 고총 축조 수법 및 구조, 출토 유물 등에서 인접한 임당동·조영동 고분군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신라에 편입된 과거 압독국 유력 세력의 존재 양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아 2018년 5월 28일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에 추가 지정되었다. 또 부적리 고분군 일대에 대한 지표 조사와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발굴 조사 결과, 조영동 고분군과 이어지는 구릉 위에도 삼국 시대 고분이 밀집하여 분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형태]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토성과 잡자리를 세트로 하고 있다. 그리고 대형 고분은 구릉의 정선부(頂線部)를 따라 축조한 데 비해, 소형 고분은 구릉 사면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소형 고분은 대체로 단곽분에 속하며, 정선부에 만들어진 대형 고분은 주부곽식 묘곽을 매장 주체부로 사용하고 있다.
[출토 유물]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경주적 양식을 따르는 토기를 비롯하여, 출자형 입식을 가지고 있는 금동관,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을 가진 관모 장식[冠飾], 장식성이 매우 강한 대도(大刀), 허리띠 장식[帶金具], 금동제 신발[飾履] 등이 세트를 이루어 부장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현황]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발굴 조사 후 복원하여 보호하고 있다. 임당동 고분군은 발굴 조사 후 4기는 봉토를 복원하였고, 1기는 임당유물전시관을 만들어 내부를 공개하였다. 임당유물전시관은 관리가 미흡하다. 조영동 고분군은 임당2동 상궁당마을 동쪽 구릉상에 자리한다. 다양한 묘제의 고분들이 확인되었으며, 발굴 조사 후 복원한 6~7기의 고분이 남아있다. 현재는 고분과 주변을 잔디밭으로 조성한 후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있다. 부적리 고분군에는 현재 봉분 직경 20~30m, 높이 6.5m 정도의 대형 고분 5기가 분포하고 있다. 5기 중 3기는 도굴로 인한 도굴갱이 확인된다. 대표 고분은 북서쪽 중앙에 위치하며, 규모는 직경 약 32m, 높이 6m이다. 봉토가 일부 훼손되어 벽석이 확인된다. 고분과 주변을 잔디밭으로 조성한 후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경산 지역 최초의 정치 집단인 압독국 출신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조성된 고분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서 사용되던 돌무지덧널무덤과 동일한 양식으로 보여지며, 출토된 유물에서도 경주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압독국과 신라와의 관계 및 신라에 편입된 압독국 유력 세력의 존재 양태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