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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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邑誌慶山縣邑河陽縣慈仁縣邑誌 |
영어공식명칭 | 『Yeongnam Eupji』「Gyeongsan-hyun·Hayang-hyun·Jain-hyun Eupji」 |
이칭/별칭 | 경산현읍지,하양현읍지,자인현읍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1871년 편찬된 경상도 경산현·하양현·자인현의 읍지.
[개설]
『영남읍지』는 1871년(고종 8) 편찬된 경상도도지(慶尙道道誌)이다. 여기에는 경산현·하양현·자인현을 비롯한 경상도 64개 고을의 읍지, 11개의 역지(驛誌), 진주와 울산의 목장지(牧場誌), 부산·가산·다대의 진지(鎭誌)가 합철되어 있다. 1832년(순조 32)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와 달리 재필사 과정 없이 각 고을에서 편찬한 읍지를 그대로 합철한 것이다.
[저자]
『영남읍지』 「경산현·하양현·자인현 읍지」 는 의정부와 경상감영의 지시에 따라 경산현령 이헌소(李憲昭), 하양현감 조희식(趙熙軾), 자인현감 류도석(柳道奭)이 각각 관할 고을의 읍지를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871년 9월 의정부는 각 고을에 읍지·지도·읍사례 및 영·진·역지를 편찬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이에 경산현·하양현·자인현을 비롯한 각 고을은 장당 20행인 책판 견본에 맞추어 지도를 수록한 읍지를 편찬하였으며, 이를 성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급 기관인 경상감영으로 올려 보냈다. 경상감영은 수합한 관내 각 고을의 읍지를 일정하게 성책해 『영남읍지』로 엮은 뒤, 상자에 넣어 의정부로 상송하였다.
[형태/서지]
『영남읍지』는 총 17책의 필사본으로 엮여져 있다. 크기는 세로 31.2㎝, 가로 20.8㎝이며, 사주단변(四周單邊)에 행자수는 10행 20자,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경산현읍지」와 「하양현읍지」는 제7책에 수록되어 있으며, 분량은 각각 16장과 9장이다. 제9책에 수록된 「자인현읍지」는 모두 28장으로 세 고을 중 내용이 가장 풍부하다.
[구성/내용]
「경산현읍지」는 지도·강역·건치연혁·군명·관직·성씨·산천·풍속·방리·호구·전부(田賦)·군액·성지·공해·군기·봉대·창고·사창·축물(畜物)·봉수·학교·단묘·불우·누정·도로·교량·제언·장시·역원·목장·형승·고적·토산·진공·봉름·환적·과거·인물·제영·책판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수·관애·진보·능묘·공해·도서는 항목 자체를 제외시켰으며, 1832년의 『경상도읍지』에서 제외되었던 축물(畜物) 항목을 두고 지금은 ‘무(無)’라고 하였다. 방리조에서는 각면에 속한 리(里)와 관문 간의 거리가 기재되어 있다. 이전 읍지에서 방(坊)·촌(村) 등으로 기재했던 하부 행정 구역을 모두 리로 통일하였다. 호구는 1870년(고종 7) 기준으로 3,165호 16,131구이다.
「하양현읍지」는 군명을 현명(縣名), 방리(坊里)를 방리(防里)로 표기하였고, 전부(田賦)·임수·제영·비판을 생략하였다. 능묘·관애·진보·도서·성지·목장은 ‘무’라고 기재해 놓았다. 당시 호구는 1,750호, 7,525구로 나타난다. 가장 말미에는 읍사례대개(邑事例大槩)가 수록되어 있다.
「자인현읍지」는 1768년(영조 44)에 편찬한 읍지를 저본으로 삼고 있다. 1832년에 추가한 임수와 군기가 없고, 장시 다음에 어염을 두어 ‘무’라고 기재해 놓았다. 호구는 무자식 원호를 기준으로 3,081호, 인구 11,621구라 하였는데, 여기서 무자년은 1768년에 해당된다.
[의의와 평가]
『영남읍지』 「경산현·하양현·자인현 읍지」 는 19세기 후반 경산현과 하양현 지역, 18세기 중반 자인현 지역의 역사·지리 정보 및 조세·군역 등을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