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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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嶠南誌慶山郡河陽郡慈仁郡 |
영어공식명칭 | 『Gyonamji』「Gyeongsan·Hayang·Jai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1940년 대구에서 간행한 경산군·자인군·하양군의 읍지.
[개설]
『교남지』는 1940년 대구에서 간행된 경상도 도지(道誌)로 정원호(鄭源鎬)에 의해 편찬되었다.
[저자]
『교남지』의 저작 겸 발행인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출신의 정원호이다. 인쇄소는 대구부의 경문당인쇄소(慶文堂印刷所), 인쇄인은 박순달(朴淳達), 발행소는 이근영방(李根泳方)이다.
[편찬/간행 경위]
『교남지』는 1938년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1940년 간행되었다. 1871년(고종 8) 편찬된 『영남읍지』를 참고하였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경상도의 마지막 도지이다. 정원호가 쓴 서문에 따르면 옛 것을 탐구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교남지』를 편찬했다고 한다.
[형태/서지]
총 76권 15책으로 신연활자(新鉛活字)로 인쇄되었다. 10행 24자로 크기는 세로 25.3㎝, 가로 17.8㎝이다. 경산군은 권5, 하양군은 권7, 자인군은 권6에 각각 수록되어 있으며, 경산군은 10장, 하양군은 7장, 자인군은 8장으로 엮여져 있다.
[구성/내용]
경산군은 연혁·지세급위치(地勢及位置)·군명·관직·성씨·산천·풍속·면동(面洞)·호구·토지·부세·토산·관공서·교원(校院)·사찰·관안(官案)·인물·도로·교량·제언·시장·역원·총묘(塚墓)·고적·누정·책판(冊板). 자인군은 연혁·군명·구관원(舊官員)·성씨·산천·풍속·토산·구공해(舊公廨)·교원·사찰·관안·인물·제언·시장·구역원(舊驛院)·고적·누정·비판(碑板), 하양군은 연혁·군명·구관원·성씨·산천·풍속·토산·구공해·교원·사찰·관안·인물·교량·제언·시장·구역원·총묘·고적·누정·비판·책판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산군의 연혁조에는 1914년 경산군·하양군·자인군이 통합된 것과 이때 신녕군 남면 박사동, 영천군 창수면 남성동, 청도군 일위면 석현동이 편입된 사실을 밝혀 놓았다. 면동·호구·토지·부세는 경산군에만 편성해 놓았는데, 그 중 면동조에는 1914년 통폐합된 경산면·고산면·안심면·하양면·와촌면·진량면·자인면·용성면·남산면·압량면·남천면 등 11면 195동의 지명이 나열되어 있다. 호구는 16,295호, 84,457인, 토지는 밭 5,628정(町) 1반(反), 논은 8,864정 6반, 임야가 30,862정으로 나타난다. 교원조에는 1908년에 세워진 경산심고교(慶山尋高校)부터 1932년에 개교한 남천공보교(南川公普校)까지 14개의 근대학교가 열거되어 있다. 도로조에는 철도, 교량조에는 금호강교, 시장조에는 읍시장과 반야시장, 역원조에는 고모역·경산역·삼성역·반야월역·청진역(淸津驛)·하양역·경산우편소·하양우편소·자인우편소를 수록하였다.
자인군과 하양군은 대체로 이전 읍지를 참고해 구성하였으며, 관원·공해·역원 앞에는 ‘구(舊)’자를 기재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교남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마지막 읍지로서, 근대 이후 시대적 변화상을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