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00
한자 慶州都會慶山縣慈仁縣地圖
영어공식명칭 『Gyeongju Dohoe Jido』「Gyeongsan-hyun·Jain-hyun Map」
이칭/별칭 『경주도회좌통지도』「경산현·자인현 지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지도

[정의]

18세기 후반 제작된 『경주도회』에 수록된 경산현·자인현의 지도.

[개설]

『경주도회(慶州都會)』는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좌도(慶尙左道) 18개 군현을 그린 지도첩이다. 읍치와 주요 건축물 및 하천을 도형화(圖形化)한 것으로 18세기 후반 경산현·자인현을 그렸기에 당시의 모습을 유추하는데 용이하다.

[제작 발급 경위]

『경주도회』의 제작자와 간행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18세기 중반 조정에서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유사한 형식으로 제작된 지도라는 점을 볼 때 그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대구부」의 경우 『해동지도』에는 대구읍성이 없지만, 『경주도회』에서 그 읍성이 묘사되어 있다. 대구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축조된 것으로, 『해동지도』는 그 이전에 제작된 것임을 보여주고, 『경주도회』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본 지도가 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간행 경위는 당시 조선 정부가 지방의 행정 실무 파악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

『경주도회』는 1첩(帖)으로 구성된 채색 필사본으로 9절(折)로 구성되었다. 크기는 가로 34.5㎝, 세로 22.5㎝ 이다.

[구성/내용]

「경산현지도」에서 읍치는 방형(方形)의 범례로 성곽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군현명은 적색 원형 안에 표시했다. 객사와 아사(衙舍), 사창(司倉)은 팔작지붕 모양의 회화로 표현했고 지당(池塘)은 청색 바탕의 원형으로 그렸다. 서문(西門)인 진옥루(鎭玉樓)에는 옹성(甕城)을 표기했으나 성문의 위치를 남문(南門)에 오기(誤記)한 실수가 보인다. 경산읍성 밖으로 향교와 사찰인 안흥사(安興寺), 경흥사(慶興寺), 쌍계사(雙溪寺)도 팔작 지붕의 범례로 나타냈다. 고산서원(孤山書院)과 사직단은 명칭만을 기록했다. 면의 명칭은 황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를 사용하여 정확한 위치에 표기했으나 도로는 생략됐다. 산천은 흑묵(黑墨)의 산수화와 청색 바탕의 물줄기 형태로 표현하여 군현의 경계를 삼고 있다. 남쪽은 마암산(馬岩山)과 송정현(松亭峴)이 밀양과 청도를 경계로 삼고 있으며 북쪽은 금호강(琴湖江)이 대구와 구분을 짓고 있다. 동쪽은 오목천(烏木川)자인현과의 경계를 관통하고 있으며 서쪽은 동학산(動鶴山)이 대구와 인접하고 있다. 지도의 상단에는 경산현의 주기(注記)가 있다. 성곽의 길이, 민호(民戶)의 수, 원전답(元田畓), 제언(堤堰)의 길이 및 군영에 속한 군인 총수 등이 기록이 있다. 또한 읍치를 중심으로 방리(方里)가 표기되어 있는데 각 면과 근접한 군현과의 거리를 나타냈다.

「자인현지도」에서 읍명은 적색 원형 안에 나타냈고 객사, 아사, 창사(倉舍), 향교의 관청 건물과 대흥사(大興寺), 신림사(新林寺), 회재관란서원(晦齋觀瀾書院)이 팔작 지붕의 범례로 표현했다. 면의 명칭은 황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로 표시하여 가촌면(加村面), 구사현면(仇史縣面), 대사동면(大寺洞面), 하내리면(河內里面), 하조곡면(下早谷面), 남방면(南方面)을 표기하였다. 산천에서 산맥은 ‘∧’ 형의 흑묵 산수화로 표현하여 군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의 경계는 삼성산(三聖山)이 청도 옆에 위치하고 있고 북쪽은 백월산(白月山)이 영천과 근접하고 있다. 동쪽은 구룡산(九龍山)이 밀양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대왕산(大王山)이 경산과 경계를 나누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로 나타내어 자인현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도의 상단에는 자인현의 주기가 있는데 성곽은 없기 때문에 내용이 없고 호구수, 각 군영에 속한 군인 및 조세와 관련된 전답 등의 결수(結數)의 기록이 있다. 자인현의 방리는 읍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각 면의 넓이를 나타냈다.

[의의와 평가]

『경주도회』 「경산현·자인현 지도」 는 관찬으로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의 구도와 모습을 원본(原本)으로 하였다. 그러나 호구 및 전답 등과 관련된 주기에서 양 지도의 차이가 있다. 이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리 정보는 이전 지도를 계승한 반면 호구, 조세 등의 변화가 있는 정보는 지도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주도회 좌통지도』「경산현·자인현 지도」를 통해 18세기 경산 지역의 사회·경제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 『경주도회』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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