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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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備邊司印方眼地圖嶺南地圖慶山河陽慈仁 |
영어공식명칭 | 『BiByonsainbangan Jido』「Youngnam Jido Gyeongsan-hyun·Hayang-hyun·Jain-hyun Map」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12월 22일 - 『비변사인방안지도』「영남지도 경산·하양·자인」 보물 제158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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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성격 | 지도 |
발급자 | 비변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제1585호 |
[정의]
18세기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영남지도」에 수록된 경산·하양·자인의 지도.
[개설]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영남지도(嶺南地圖)」는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 소재했던 71개 군현의 지도가 들어있는 지도첩이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85호로 지정되었고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보관 중이다.
[제작 발급 경위]
『비변사인방안지도』는 조선 후기 최고 의결기관(議決機關)이던 비변사가 지방 행정 실무를 파악하고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간행 시기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도에 수록된 몇몇의 내용을 통해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먼저 5책의 하동(河東) 지도에 표시된 읍치가 1745년(영조 21)에 옮겨진 곳으로 표시되어 있고 고령(高靈) 지도에는 1745년에 만들어진 개호정(開湖亭)이 표현되어 있어 역시 1745년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도책은 1745년 이후의 상황을 근거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창원(昌原) 지도에는 1760년(영조 36)에 설치한 반산창(盤山倉)이라는 조창(漕倉)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지도책은 1760년 이전의 시기를 근거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지도에 수록된 내용만을 놓고 볼 때 1745년에서 176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된다.
[형태]
『비변사인방안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총 6책으로 되었고 크기는 각 책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로 83㎝~89㎝이며, 세로 106㎝~108㎝이다.
[구성/내용]
조선 시대 경산은 경산군·하양현·자인현으로 구성되었기에, 『비변사인방안지도』「영남지도」에서도 이들 고을을 각각의 지도로 그렸다. 경산과 하양은 6책이고 자인은 3책에 속해 있다.
「경산지도」는 1리(里) 방안 위에 그린 것으로 읍치는 성첩(城堞)이 그려진 분홍 바탕의 장방형(長方形)의 범례로 표현되었고 그 안에 글씨로 나타냈다. 읍치 오른쪽에 향교가 팔작 지붕의 회화로 표시되었으며 사찰인 쌍계사(雙溪寺), 경흥사(慶興寺), 안흥사(安興寺), 성암(聖庵), 여불암(如佛庵)과 고산서원(孤山書院)도 같은 형태로 표시되었다. 수령(守令)의 중요한 제사 기능을 담당했던 사단(社壇)과 성황단(城隍壇) 및 여단(厲壇)이 백색 바탕의 방형(方形)의 범례로 각자의 위치에 자리해 있다. 행정 구역인 면(面)은 황색 바탕에 장방형의 범례로 되었고 남, 북, 동, 서면이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교통의 역(驛)은 자색 바탕에 장방형의 범례로 압량역(押梁驛)이 표시되었다. 도로는 크기에 따라 색깔로 구분을 달리 했는데 대로(大路)는 적색으로, 중로(中路)는 황색으로, 소로(小路)는 청색으로 표현하였다. 산맥은 산수화로 연출했는데 산맥을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남쪽의 산줄기에는 마암산(馬岩山)과 이어치(伊於峙)가 있고 청도와 밀양과 경계를 삼고 있다. 북쪽의 산줄기는 승치(蠅峙)가 대구와 연접하고 있으며 동쪽의 산줄기는 현성산(賢聖山)이 자인과, 서쪽의 산줄기는 대덕산(大德山)과 대장현(大墻峴)이 대구와 접하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로 표현했는데 남쪽에서 발원하는 남천(南川)이 북쪽으로 흘려 금호강(琴湖江)으로 합류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지도의 상단에는 경산의 주기(注記)를 기입했는데 민호의 수와 양부전(量付田)과 원회미(元會米) 및 색군(色軍) 등의 군병에 속한 군인의 수가 적혀있다. 이어서 읍치를 기준으로 각 면과 지도에 표시된 주요 건물과의 거리가 표기되었다.
「하양지도」는 1리의 방안 위에 제작되었고 분홍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 안에 글자로 읍치라 명기했다. 읍창(邑倉)과 향교, 금호서원(琴湖書院), 환성사(環城寺)는 팔작 지붕 형태의 회화로 표현했다. 성황단은 적색의 회화로 표시한 반면에 사직단과 여단은 글씨로만 적혀있다. 시산봉수(匙山烽燧)는 적색 바탕의 방형의 범례로 산 정상에 그려져 있다. 각 면은 황색 바탕의 장방형의 범례로 나타냈는데 와촌면(瓦村面), 북면(北面), 중림면(中林面), 낙산면(樂山面), 마양면(磨陽面), 안심면(安心面)을 각각의 자리에 표기하였다. 특이한 점은 경산의 북면이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 형태로 들어와 있다. 교통로인 도로는 크기에 따라 적색과 황색, 청색으로 구분했다. 역은 읍치의 왼편에 위치한 화양역(華陽驛)이 분홍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로 표시했다. 산맥은 산수화로 표현하였고 산형(山形)을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남쪽의 경계는 두락산(豆落山)이 경산과 접하고 있고 북쪽의 산맥은 무락산(無落山)과 초례산(醮禮山)이 신령과 대구와 인접하고 있다. 서쪽의 산맥은 별방산(別方山)과 광명산(光明山)이 경산과 경계를 두고 있다. 하천은 청색의 물줄기로 표현하여 현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도의 상단에는 하양의 주기가 있다. 호구수와 조세와 관련된 미곡 및 각 군영에 배속된 군인의 수가 망라되어 있으며 읍치를 기준으로 각 면과 주요 건물에 대한 거리가 표기되었다.
「자인지도」도 1리의 방안 위에 작성되었으며 읍치는 분홍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로 표현되었다. 향교와 함께 사찰인 대흥사(大興寺), 신림사(新林寺), 반룡사(盤龍寺), 백운암(白雲菴), 내원암(內院菴), 원통암(圓通菴), 신방암(新房菴)과 관란서원(觀瀾書院), 남천상덕사(南川尙德祠), 충현사(忠賢祠) 등이 팔작 지붕 형태의 범례로 표시되었다. 하지만 수령의 제향 기능을 담당했던 사직단, 성황단, 여단은 생략되었다. 면은 황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로 나타냈는데 읍치를 기준으로 하남면(下南面), 상남면(上南面), 상북면(上北面), 하북면(下北面), 상동면(上東面), 하동면(下東面), 서면(西面)을 각각의 자리에 표기하였다. 교통로인 도로는 크기에 따라 적색과 황색, 청색으로 구별 지었고 산역(山驛)이 흑색 바탕의 장방형 범례로 표현되었다. 산세(山勢)는 녹색 바탕의 산수화로 표현했으며 산 능선을 연결시키지 않았다. 남쪽의 산맥은 용산(龍山)이 있는데 청도와 경계를 접하고 있고 북쪽의 산맥은 금박산(金朴山)이 영천과 경계를 두고 있다. 동쪽의 산맥은 구룡산(九龍山)과 박거산(朴巨山)이 청도와 접하고, 서쪽의 산맥은 경산과 접해 있는데 산의 이름이 생략되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로 금호강의 지류였던 오목천(烏木川)이 남동쪽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의 흘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의 상단에는 자인의 주기가 있다. 목록을 보면 먼저 호구수가 적혀있고 이어서 조세와 관련된 내용이 상세기 기록되어 있다. 각 군영에 속한 군인의 총수 및 읍치를 중심으로 인접한 군현과의 거리와 면과 사찰 및 산까지의 거리가 기록 되어있다.
[의의와 평가]
『비변사인방안지도』 「영남지도 경산·하양·자인」 은 1리의 방안이라는 축척을 적용하여 과학적으로 지도를 제작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나아가 경산·하양·자인의 인문·지리 및 사회·경제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지도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