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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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慈仁鄕校所藏古典籍一括 |
영어공식명칭 | A Classical Batch of Jain Hyanggyo Major Genera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길9길 14[교촌리 23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영 |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자인향교에서 생산한 성책 고문서 일괄.
[개설]
자인향교(慈仁鄕校)는 자인현(慈仁縣)이 조선 전기 경주부(慶州府)의 속현임에도 불구하고 1562년(명종 17) 경주 부윤(慶州府尹) 이정(李楨)의 청원으로 건립되었다. 1637년(인조 15) 자인현이 경주부로부터 독립하였으며, 1675년(숙종 1) 도천산 아래로 이건하였다. 현재 자인향교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자료들이 망실되었지만, 1992년 간행한 『경북향교자료집성』(Ⅰ)에 9종의 성책 고문서가 영인되어 있다. 2004년 일반동산문화재 일괄조사 때는 「청금록」[정해, 임오] 2책만 남아 있었다.
[제작 발급 경위]
19세기 이후 자인향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유생들의 명단, 향교 전답, 향교 소속 하전 등의 관리 및 인수인계를 위해 작성하였다.
[형태]
1992년 간행된 「경북향교자료집성」(Ⅰ)에 수록된 자인향교 소장 고전적 일괄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청금록(靑衿錄) 숭정기원후사신사(崇禎紀元後四辛巳) 원월(元月)」의 크기는 세로 48㎝, 가로 30㎝이며, 필사본 1책 31면이다. 「청금록(靑衿錄) 숭정기원후오정해(崇禎紀元後五 丁亥) 10월(十月)」의 크기는 세로 31㎝, 가로 30㎝이며, 필사본 1책 49면이다. 진한 청색 표지에 표제는 황색 종이에 ‘향교청금록’이라 표제가 적혀 있다. 「청금록(靑衿錄) 임오(壬午) 4월(四月)」의 크기는 세로 30㎝, 가로 29㎝이며, 필사본 1책 9면이다. 연한 녹색 표지에 흰색 종이에 ‘청금록’이라 표제가 적혀 있다.
「향교교생안(鄕校校生案) 계해(癸亥)」의 크기는 세로 27㎝, 가로 19㎝이며, 필사본 1책 5면이다. 「향교교생안(鄕校校生案) 을해(乙亥) 2월(二月)」의 크기는 세로 27㎝, 가로 21㎝이며, 필사본 1책 5면이다. 「교생개안책(校生改案冊) 병인(丙寅) 정월(正月)」의 크기는 세로 29㎝, 가로 23㎝이며, 필사본 1책 6면이다.
「향교사적(鄕校事蹟)」의 크기는 세로 27㎝, 가로 21㎝이며, 필사본 1책 19면이다. 「향교전직서원하전안(鄕校殿直書員下典案)」의 크기는 세로 26㎝, 가로 22㎝이며, 필사본 1책 5면이다. 「향교전여책(鄕校傳與冊)」의 크기는 세로 27㎝, 가로 22㎝이며, 필사본 1책 8 의 성책 고문서이다. 「교생납답안(校生納畓案)」의 크기는 세로 25㎝, 가로 18㎝이며, 필사본 1책 면의 성책 고문서이다.
[구성/내용]
「청금록 숭정기원후사신사 원월」은 서두에 서문(序文)이 실려 있고 1880년(고종 17)부터 1887년(고종 24)까지의 자인향교의 교임 명단을 기재하고 있다. 서문의 말미에 자인 현감과 감사(監司)의 뎨김[題音]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서문의 내용은 작성되기 전 또 다른 형식으로 관청에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자인 지역의 유생인 최몽수(崔夢洙)·박치준(朴致準)·안병일(安炳一)이 연명으로 관청에 장계하였고, 도유사(都有司) 김영로(金永魯)가 다시 정서(正書)하였음이 확인된다.
「청금록 숭정기원후오정해 10월」의 서두에는 박치준이 쓴 서문 및 자인향교 교임의 임명과 관련한 절목(節目)이 실려 있다. 당시 현감 이규학(李奎學)과 도유사 전석신(全錫臣), 도훈장(都訓長) 김기진(金基璡), 장의(掌議) 배학조(裴鶴祚)·안택권(安宅懽), 접유사(接有司) 박진호(朴振鎬), 반수(班首) 박치준, 공사원(公事員) 배봉조(裴鳳祚), 재유사(齊有司) 채성술(蔡聖述)의 명단이 있다.
「청금록 임오 4월」은 서문과 자인향교의 교임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은 본 자료가 엮여지던 1942년 4월 박순국(朴淳局)이 작성하였다. 교임 명단은 1923년 1월 22일자부터 시작된다. 모두 열 번에 걸쳐 작성된 교임안을 수록하였는데, 이중 마지막 1944년 2월 3일의 교임안은 본 자료가 엮여진 이후에 추록한 것이다.
「향교교생안 계해」는 계해년 11월에 거행된 석전례에 향알한 자들의 명단이다. 강재임(講齋任)은 배상검(裵尙儉)·진시대(秦始大)·박방춘(朴逄春)·최환달(崔奐達)이며, 집사(執事)는 김광욱(金光郁)·김명학(金鳴學)·김태명(金兌明)·김익회(金益悔)·박효원(朴孝元)·이재춘(李再春)·임만갑(林萬甲)·이상업(李尙業) 등이다. 액내(額內) 교생으로는 최창발(崔昌發) 외 19명의 이름이 확인된다.
「향교교생안 을해 2월」은 을해년 2월의 석전례 후 작성한 교생안이다. 여러 집사 및 액내 교생 14인, 액외 교생 7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계해년 집사였던 김태명이 강재임을 맡고, 계해년과 을해년에 강재임으로 배상검이 확인된다. 액내에서 집사, 집사에서 재임으로 단계적 승급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생개안책 병인 정월」은 병인년 정월의 정알례 당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강재임 4인과 전내집사 4인, 전패집사 4인 등의 팔집사와 액내 교생 34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이름 아래에 파정(罷定), 고(故), 원납(願納), 유리(流離) 등 향알 이후 인사들의 신변 변동 상황을 부기해 놓았다.
「향교사적」은 1813년부터 1838년까지 향교의 사적에 관하여 시대 순으로 기록한 것이다. 향교 기물의 구입과 식리(殖利) 상황, 전답의 관리와 건물의 수리, 교임의 상례시 부의(賻儀) 등 향교 운영 전반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향교전직서원하전안」에는 자인향교의 전지기[殿直], 서원(書員), 지유사기역하전(紙油沙器役下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 전지기는 향교 건물의 보호, 윤번 숙직, 향교의 여러 집물 관리를 담당하였는데, 본 자료에는 김시섬(金時蟾)을 비롯해 모두 9명이 소속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외 서원은 이동보(李東寶)를 포함해 2명이며, 도하전(都下典)은 백장복(白長福)을 포함해 2명이다. 마지막으로 지유사기역하전은 종이와 기름, 사기그릇과 관련된 역을 담당하는 사역인들로 노(奴) 봉대(奉代)를 비롯해 9명 신분이 모두 ‘노’로 명기되어 있다.
「향교전여책」은 교임들의 인수인계시 문서와 집물을 확인한 문서이다. 작성일이 ‘신미(辛未) 8월(八月)’로 되어 있으나, 신미년이 언제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문서 말미에 인계자와 인수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해당 전여 목록에는 현재 전하지 않는 여러 문서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교생납답안」은 계미년에 작성된 교생 7명이 논을 납입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납답인은 이광춘(李光春)·박사승(朴思僧)·최성우(崔聖祐)·김유성(金有聲)·원만옥(元萬玉)·천광수(千光守) 등 7명이다.
[의의와 평가]
자인향교 소장 고전적 일괄은 19세기 이래로 자인향교의 운영 실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사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오횡묵의 『자인총쇄록』에 수록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