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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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順 太氏 |
영어공식명칭 | Youngsoon Ta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기원 |
입향 시기/일시 | 16세기 말 - 영순 태씨 태순금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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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영순 -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
입향지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 |
성씨 시조 | 태금취 |
입향 시조 | 태순금 |
[정의]
태금취를 시조로 하고 태순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세거 성씨.
[개설]
영순 태씨(永順 太氏)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로,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에 집성촌이 있다. 영순 태씨는 발해왕조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연원]
영순 태씨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한반도 북부 및 만주, 연해주에 걸쳐 강역을 확보하였던 발해 왕실의 후손이다. 발해는 926년에 거란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는데, 발해의 마지막 왕자인 대광현(大光顯)이 발해 유민을 이끌고 고려에 들어왔다. 이때 고려 왕실로부터 태씨(太氏) 성을 받았다는 설과 이전부터 태씨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대광현의 후손 대금취(大金就) 혹은 태금취는 몽골의 침략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태금취는 전공에 대한 포상으로 영순현(永順縣)[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태금취의 후손들은 태금취를 중시조로,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大仲象)을 도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 경위]
영순 태씨 을해보에 의하면 태금취는 상주[태금취가 식읍으로 하사받은 영순현은 고려 시대에는 상주 관할이었음]에 정착하였다. 이후 태금취의 후손들은 여러 곳으로 이거하였다. 태금취의 6세손 태영길(太英吉)은 예천 지역으로 이거하였으며, 17세손 태순금(太舜琴)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산 지역으로 피난하여 지금의 남천면 송백리 일대에 정착하였다.
[현황]
영순 태씨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 기준으로 경상북도 경산시에 202명이 거주하고 있다. 집성촌은 경산시 남천면 송백2리에 있는데, 27가구 40여 명이 거주 중이다. 집성촌에서는 ‘발해왕조제례보존회’를 중심으로 발해왕조에 대한 계승과 선양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관련 유적]
영순 태씨 관련 유적으로는 추모재와 상현사(尙賢祠)가 있다. 추모재는 서암(西庵) 태두남(太斗南)을 배향한 재실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며, 오량가 구조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고,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재실 뒤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상현사는 대중상과 대조영을 비롯한 역대 발해왕조의 왕과 선조들을 배향한 사우로, 19위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발해왕조제례보존회에서 매년 춘분에 상현사에서 춘향대제를 봉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