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72 |
---|---|
한자 | 任善伯 |
영어공식명칭 | Lim Seonbaek |
이칭/별칭 | 경여(慶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에 부임한 문신.
[개설]
임선백(任善伯)[1596~1656]은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37년(인조 15) 초대 자인현감(慈仁縣監)을 역임하였다.
[가계]
임선백의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경여(慶餘)이다. 조선 전기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를 지낸 임구(任球)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조정랑을 지낸 임장(任章), 어머니는 황정신(黃廷愼)의 딸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임선백의 할아버지는 종부시정(宗簿寺正)을 지낸 임영로(任榮老), 할머니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지낸 임열(任說)이다. 부인은 판관 김응명(金應命)의 딸 강릉 김씨(江陵金氏)이다. 임선백은 4남 1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임중(任重)은 사헌부 지평, 막내아들 임당(任堂)은 장예원 판결사를 지냈다.
[활동 사항]
임선백은 1623년(인조 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32년(인조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호조좌랑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 사수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1637년(인조 15) 경주부(慶州府) 속현(屬縣)에서 독립되된 자인현의 초대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복현 이후 자인현 백성들은 경주부의 임내(任內)였던 구사부곡(仇史部曲)[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일대]의 합속(合屬)을 청원하였는데, 임선백은 자인현의 입장에서 이를 처리하였다. 또한 자인현의 정청(政廳)인 사중당(使衆堂)[무금헌(撫琴軒)]을 지었다. 1642년(인조 20) 자인현감에서 이임하자, 백성들이 임선백의 치적을 기리고자 불망비(不忘碑)를 세워주었다. 이후 공조정랑을 거쳐 1644년(인조 22)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었다. 1646년(인조 24) 강빈옥사가 일어났을 때, 강빈(姜嬪)을 두둔하다 체차의 명을 받았다. 1649년(효종 즉위)에 전라도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으며, 1651년(효종 2) 순천부사, 1654년(효종 5) 장악원정에 제수되었다. 1656년(효종 7) 영흥부사 재임 중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임선백의 묘소는 경기도 하남시 초일동 산2의 정평(庭坪)[청뜰]에 있다. 손자 임상원(任相元)[1638~1697]이 묘표(墓表)를 지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되었다. 1792년(정조 16) 6월에 자인현 백성들이 불망비를 다시 세웠다. 비명은 ‘현감임후선백영세불망비(縣監任侯善伯永世不忘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