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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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城誌 |
영어공식명칭 | 『Hwaseongji』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재두 |
편찬 시기/일시 | 1934년 - 『화성지』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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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화성지』 국역본 간행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
간행처 | 곡물재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
성격 | 읍지 |
저자 | 허병률 |
권책 | 2권 1책 |
행자 | 10행 20자 |
규격 | 세로 28.7㎝|가로 19.3㎝ |
권수제 | 화성지 |
판심제 | 화성지 |
[정의]
1934년 편찬된 옛 하양현의 사찬읍지.
[개설]
『화성지(花城誌)』는 옛 하양현을 다루고 있는 사찬읍지로 허병률(許秉律)[1885~1943]이 편찬하였으며, 경산의 곡물재(谷勿齋)에서 간행되었다.
[저자]
『화성지』의 편찬자 허병률은 경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광복 회원 및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한 인물이다. 『화성지』 권말의 임원록에는 도청(都廳) 김상룡(金象龍)을 비롯해 도감·찬집도감(纂輯都監)·찬집유사·교정유사·사정(査正)·감인(監印)·간사·장재(掌財)·편집 등 편찬 당시 36명의 임원이 기재되어 있다.
[편찬/간행 경위]
『화성지』 서문에 따르면 허병률의 발의로 고을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편찬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발문에는 하양이 인근 군과 합쳐졌지만, 옛날의 산천은 지도와 문적에 고치지 않고 남아 있다면서 옛 하양의 별칭에서 제목을 가져와 ‘화성지’라 했음을 밝혀 놓았다. 1914년 경산·하양·자인 세 고을이 경산으로 통합되었기에 허병률을 중심으로 한 옛 하양 지역 출신의 유림들이 하양 지역 만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남기고자 『화성지』를 편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성지』는 1933년 9월 25일 허가를 받아 다음해인 1934년 1월 6일 대구 남산동의 진진당(津津堂)에서 인쇄하여, 1월 9일 곡물재에서 간행하였다. 2000년에는 하양읍 번영회의 의뢰로 장재호(張在鎬)가 번역한 국역본이 대구 대보사에서 간행되었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석인본(石印本)이다. 10행 20자에 크기는 세로 28.7㎝, 가로 19.3㎝이며, 표제와 내제 모두 ‘화성지’이다.
[구성/내용]
가장 앞에 ‘화성지서(花城誌序)’가 수록되어 있으며, 본문은 권1의 경우 범례(凡例)·지방·건치연혁·읍기·도리·지광·산천·토산·풍속·구방리·신방리·잡종세·진공·부역·봉름·관직·군병·군기집물·창고·조적·성보·공해·현대공해·시장·교량·도서·제언·역원·철도역·도로등급·봉대·고적·능묘·향교·사단·사원·재각·누정·승지(勝地)·사찰·학교·성씨·관적·전거성씨(奠居姓氏), 권2는 과목·인물·충의·효행·열행·관작·수직(壽職)·유행(儒行)·문원(文苑)·필원(筆苑)·혜시(惠施)·장문(長文)·제영·화성지발·임원록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김상룡, 발문은 허균(許稛)이 썼다.
건치연혁에서는 1914년 3월 군을 폐하여 경산군 소속이 된 사실을 밝혀 놓았다. 신방리조에서 하양면의 경우 조선인 1,676호, 일본인 64호인데, 1933년에 편찬한 『경산군읍지』에는 조선인 1,638호, 일본인 63호, 중국인 6호로 나타나, 비교·검토가 가능하다. 과목에는 문과만이 아니라, 무과·생진 합격자까지 수록하였으며, 장문에는 각종 기문을 비롯해 비문·양송(樑頌)[대들보 올릴 때의 송]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화성지』는 1930년대 옛 하양현 지역의 각종 통계를 비롯해 각 문중에 소장된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따라서 이전 관찬읍지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인물 자료가 풍부하다.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 변모해 가는 하양 지역의 모습을 살펴 보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