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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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在瓚 |
영어공식명칭 | Hwang Jaechan |
이칭/별칭 | 장옥(章玉),오당(梧堂)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개항기 경산 출신의 학자.
[개설]
황재찬(黃在瓚)[1862~1919]은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군으로부터 하양 지역을 방비하기 위해 약조(約條)를 제정하였다.
[가계]
황재찬의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장옥(章玉), 호는 오당(梧堂)이다. 임진왜란 때 하양현(河陽縣)에서 의병을 일으킨 황경림(黃慶霖)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황만조(黃萬祚), 어머니는 이이실(李以實)의 딸 광주 이씨(廣州李氏), 할아버지는 황이익(黃履翊), 증조할아버지는 황기영(黃基永)이며, 부인은 이재종(李在淙)의 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황재찬은 1862년(철종 13) 경상도 하양현 동곡리(東谷里)[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서 태어났다. 1890년(고종 27) 대구향교 낙육재(樂育齋)에 입학하여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이헌영(李𨯶永)에게 학문을 배웠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후담(後潭) 채헌식(蔡憲植)과 더불어 약조를 정하고, 마을 사람들을 무장시켜 고을을 방비하였다. 같은 해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고향에다 쌍계재(雙溪齋)를 짓고 채헌식·조병희(曺秉羲)·최정삼(崔楨三) 등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였는데, 낭산(朗山) 이후(李垕)와는 도의(道義)로써 교제하였다. 또한 면약(面約)을 제정하여 향촌 교화에도 힘썼다. 1919년 고종 인산(因山) 때 산에 올라 하루 종일 망곡(望哭)하였다.
[학문과 저술]
황재찬의 문집으로 『오당집(梧堂集)』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
황재찬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의 장수 황씨 승방묘원(勝芳墓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