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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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溪南亭 |
영어의미역 | Gyenamjeong Pavill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472-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강동욱 |
건립 시기/일시 | 19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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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472-1 |
성격 | 재실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전주 최씨 모산공파 문중 |
관리자 | 전주 최씨 모산공파 문중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있는 개항기 최숙민(崔琡民)을 기리는 재실.
[개설]
계남정(溪南亭)은 계남(溪南) 최숙민[1837~1905]의 재실이다. 계남 최숙민은 절의를 숭상하던 영남 남인 가문 출신의 학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순국한 모산(茅山) 최기필(崔琦弼)[?~1593]의 8세손으로,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매진하였다.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1833~1906] 등 당시 기호학맥의 기라성 같은 선비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후손들을 위해 산천재의 강규(講規)를 정하기도 하였다.
만년에 제자들이 자옥산(紫玉山) 남쪽에 서당을 지어 계남 최숙민을 머물게 하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으므로, 고향에서 최숙민은 제자들을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병이 깊어도 오직 가르침을 쉬지 않았으며, 1905년(고종 42) 6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변천]
계남정은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인 전주 최씨(全州崔氏) 계남 최숙민의 학덕을 기리기 위한 재실로, 1905년 후손과 유림들이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 건립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일자형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계남정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전주 최씨 모산공파 문중이다. 지역의 유생들이 유림계를 조직하여 매년 3월 16일 계남 최숙민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말 영남 노사학파의 중요 인물인 계남 최숙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계남정은 하동 지역의 노사학맥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