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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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球文川里 |
영어공식명칭 | Gumun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양섭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구문천리(球文川里)는 향남읍의 서남쪽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상신리, 동쪽으로 하길리와 양감면 요당리, 남쪽으로 평택시, 서쪽으로 발안천을 넘어 장안면 독정리와 접한다. 자연마을로는 구미리, 당아랫골, 돌내, 물언이, 절골 등이 있다.
[명칭 유래]
구문천리는 『지명유래집』에 따르면 구밀동, 문언동, 석천동을 합치면서 각 마을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구밀(求密, 求蜜)은 심한 흉년이 든 어느 해 병이 든 노승이 마을에 들어와 쓰러졌는데, 마을 주민들이 꿀[蜜]을 따다 정성껏 간호하여 병이 완쾌되었다는 전설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또 굽이진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구미리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문언(文彦)은 조선 후기 마을에 서당을 설치하여 많은 선비를 배출한 것에서 ‘글월 문(文)’자와 ‘선비 언(彦)’자를 따서 문언리로 불렀다고 한다. 또 물의 안쪽이라는 뜻의 ‘물언’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문언(文彦)이 되었다고도 한다. 석천(石川)은 돌이 많은 냇가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 옛날 마을 앞에 있던 큰 돌에서 물이 솟아나 내[川]를 이루었고, 이를 한자로 쓰면서 석천(石川)이 되었다고도 한다.
자연마을 중 당아랫골은 뒷산에 신당이 있었던 것에서, 돌내는 하천 바닥에 돌이 많이 깔렸다고 하여, 절골은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구문천리는 조선 시대 남양부 분향리면(分鄕里面)에 속하였다. 『호구총수』와 『남양읍지』에 분향리면 소속으로 기록된 구밀동(求密洞) 등이 구문천리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양군 분향리면 구밀동(求密洞)·문언동(文彦洞)·석천동(石川洞)을 병합하여 수원군 향냠면 구문천리로 개편하였다. 1949년 화성군이 신설되면서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리가 되었다.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되고, 2007년 향남면이 향남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구문천리는 북쪽과 남쪽에 구릉지가 일부 분포한다. 하지만 대체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어서 구문천리 일대를 발안들 혹은 발안평야라고도 부른다. 마을 서쪽으로 발안천이 흐르고, 북서쪽 경계를 금곡천이 지나가다 발안천에 합류한다.
[현황]
구문천리의 면적은 약 5.23㎢이다. 인구는 2021년 6월 기준으로 1,748가구에 총 2,205명이며, 남자는 1,594명, 여자는 611명이다. 주요 도로로 구문천리의 서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또한 동쪽 경계를 따라 국도 제39호가 지나가고 주변으로 발안 일반산업단지가 있다. 유적지로는 구석기 시대의 몸돌·찍개·톱니날 등이 발굴된 ‘화성 구문천리 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