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75 |
---|---|
한자 | 洪冕玉 |
이칭/별칭 | 홍면(洪冕)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홍면옥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28일 - 홍면옥 송산면 만세시위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4월 7일 - 홍면옥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 선고를 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5월 31일 - 홍면옥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 판결 확정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2월 23일 - 홍면옥 경성형무소에서 만기출옥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12월 23일 - 홍면옥 수원군 인민대표대회에서 임시집행부로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2월 26일 - 홍면옥 민족주의민족전선 경기도위원회 결성대회에서 상임위원 의장으로 선출됨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8월 - 홍면옥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 이름이 확인됨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11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1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
[활동 사항]
홍면옥(洪冕玉)[1884~?]은 1884년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홍면(洪冕)이라고도 불렸다. 1914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횡령죄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고, 1917년 12월에는 인천지청에서 도박죄로 태형 30도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홍면옥은 1919년 3월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발표 소식을 듣고 그 취지에 찬동하여 송산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홍면옥은 그와 뜻을 같이 한 왕광연(王光演)·홍명선(洪明善)·홍태근(洪泰根)·홍준옥(洪㻐玉)·차경현(車敬炫)·김교창(金敎昌) 등과 함께 1919년 3월 25일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3월 28일 오후 2시 경에는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모여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당시 치안 방해를 이유로 출동한 노구치 고조[野口廣三]에게 체포되어, 체포 과정에서 노구치 고조가 권총을 발사하여 오른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홍면옥의 총상으로 분노한 군중은 노구치 고조에게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러 그를 처단하였다. 홍면옥은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살인 교사 혐의로 징역 15년을 판결받았으나, 1920년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일부 취소 판결을 받아 징역 12년이 확정되어 경성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4년의 은사(恩赦)와 1927년의 대사령(大赦令) 등으로 징역 8년 10월로 감형되어, 1927년 12월 23일 만기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송산면 육일리에 대교서당을 열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아들 홍진후의 증언에 의하면, 홍면옥은 대교서당에서 태극기를 그리는 법과 애국가를 가르쳤다고 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송산면 치안대장을 맡았으며,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서도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수원군에서는 수원군인민위원회가 수원군청을 접수하고 자치적 업무를 수행하였다. 1945년 12월 23일 수원극장에서 '인민위원회 대표회의'가 개최되어 수원군 각 읍면 대표 1,500여 명이 참석하였는데, 홍면옥은 이하영, 박지명, 박승극 등과 함께 인민위원회 임시집행부에 선임되었다. 1946년 민족주의민족전선[民戰]이 결성되면서 인민위원회는 이에 수렴되는 형태를 취하였다. 1946년 2월 26일 민족주의민족전선 경기도위원회 결성대회가 열렸으며, 홍면옥은 상임위원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행적으로는 1946년 3월 이하영과 함께 수원군 인민위원회 대표자회의 주석단에 앉은 사실이 확인된다. 1946년 11월 5일 홍면옥이 검거된 사실을 알리는 기사에 의하면, 홍면옥은 민족주의민족전선 경기도위원회 의장뿐만 아니라, 송산면 인민위원회장을 맡은 것이 확인된다.
1948년 8월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도 홍면옥의 이름이 확인되어 월북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후 행적이나 사망과 관련하여 알려진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