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1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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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唐恩浦 |
이칭/별칭 | 당항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권기중 |
비정 지역 | 당은포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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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포구 |
관련 문헌 | 『삼국사기』|『도리기』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지역에 있던 삼국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 포구.
[명칭 유래]
당은포(唐恩浦)라는 명칭은 신라의 삼국 통일을 원조한 당을 높이고, 당의 은혜를 드러내려는 의지를 담아 작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에 해당하는 당성군(唐城郡)을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는데, 당은포라는 명칭도 같은 시기에 생겨났을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당은포라는 명칭은 8세기에 생겨났지만, 포구 자체는 이전 시기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68년(문무왕 8)에 유인궤(劉仁軌)와 김삼광(金三光)이 당항진(党項津)에 도착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당항진이 바로 당은포의 전신이다. 신라는 553년(진흥왕 14)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남양만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주목하여 당항성(党項城)[당성군에 속한 성으로,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있는 '화성 당성'에 비정됨]을 축조하였다. 당항진은 당항성의 관리 아래중국 대륙과 교섭하기 위한 창구로 이용되었으며, 삼국 통일 이후에는중국과의 교역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신라인들은 당은포에서 왕경을 잇는 교통로를 ‘당은포로(唐恩浦路)’라고 불렀는데, 다양한 문화와 새로운 문물이 수도로 유입되는 통로였다. 829년(흥덕왕 4)에는 군사 기지인 당성진(唐城鎭)을 설치하여 당은포와 주변 항로를 보호하였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당은포의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당은포와 당항성이 밀접한 관계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일대의 해안가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록]
당은포와 관련된 기록으로 『신당서』에 인용된 가탐(賈耽)의 『도리기(道里記)』가 주목된다. 당은포에서 덕적도, 장구진(長口鎮), 대동강 하구, 압록강 하구, 랴오둥반도를 거쳐 산둥반도에 이르는 연안 항로가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