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경
-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19세기 조선은 관료들의 수탈로 인해 농민 경제가 악화되었고, 1876년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에 대한 열강의 이권 침탈은 심화되었다. 전라남도 화순 지역은 실학·동학·천주교 등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혼재된 시기를 맞이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며 당시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
-
전라남도에 석탄 산지가 있다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한다. 전라남도 지역은 녹색과 황금 들녘의 전원 풍경이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색의 땅 전라남도에 검은 탄광 마을이 존재한다. 고생대 석탄기층의 평안계 사동통이 분포하여 전라남도 유일의 화순 탄광을 형성한 것이다. 화순 탄광의 탄층은 지질적으로 고생대의 구 사동퉁(寺洞統)에 대비되는 오산리층·화순층 사이에...
-
전라남도 화순군의 산업 중 광물의 채굴·선광·제련 등의 작업을 행하는 업종. 광업은 광업법상으로 광물의 채광·채굴 및 여기에 따르는 선광·제련·기타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상으로는 유용 광물의 채굴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만을 주로 지칭하며 따라서 제련에 관련된 산업은 산업 분류상 제조업 중에서 금속 관련 공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광업은 그 분류 방법이 다양하...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에 있는 대한 석탄 공사 산하 광업소.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는 석탄 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대한 석탄 공사로 재편된 광업소이다. 석탄 채굴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나아가 국가 발전을 기하기 위해 한국 전쟁 이후 미 군정청이 관리하던 화순 광업소의 운영권을 이관 받음으로써 대한 석탄 공사 산하 화순 광업소로 재편되...
-
근대 화순 출신의 계몽 운동가. 본관은 밀양. 호(號)는 효강(曉岡). 박원조(朴元祚)[1884~1923]는 일본 큐슈[九州] 대학을 수료하고 도쿄 메이지[明治] 대학 재학 중 노백린(盧伯麟)을 만나 교유하였다. 귀국 후 그는 비밀 결사인 화순 우국 동지회를 조직하고 노채필(盧彩弼)·안교일(安敎日) 등과 함께 1919년 3월 24일 화순 장날에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화순 탄광을 개광한 실업가. 박현경(朴賢景)[1883~1949]은 7세부터 김여빈(金汝彬)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누이 박농선과 인척 박영효(朴泳孝)의 후원을 받으며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1905년 4월 5일 광업권을 등록하여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08년 채탄을 시작하였으며, 1909년 2월 탄광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도일하였다....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향청리에 있었던 상설 극장. 신안 극장은 281석 규모의 개별 좌석을 갖춘 단층의 극장이었다. 1963년 화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주옥순이 주도하여 만들고, 주옥순의 이종 사촌 김규근이 관리 부장을 맡아 운영하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전라남도 읍면 단위 지역에서 개관한 대부분의 상설 극장이 이름을 해당 지역 명칭...
-
전라남도 화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화순 지역은 전라남도 중앙부에 위치한다. 내장산·추월산·설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호남 정맥이 무등산에서 안양산·두봉산·국사봉으로 연결된다. 하천은 지석천과 동복천이 화순군의 유역을 나누고 있다. 지석천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구례리에서 발원하여 화순군 서쪽을 유역 면적으로 하여 북쪽의 화순천을 합해 전라남...
-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역사. 전라남도 화순군은 조선 시대에 능주목·동복현·화순현의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786㎢의 지역이 능주목·동복현·화순현 세 개의 행정 단위로 나뉘어 있었던 것은 화순 지역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능주목의 면적은 화순 지역 전체의 약 45%, 동복현은 3...
-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창녕. 자(字)는 남조(南助). 조병열(曺秉烈)[?~?]은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부터 국내에 잠입한 신덕영(申德永)을 도우며 1920년 7월 화순의 노석중(盧錫仲)·노형규(盧衡奎)·윤영기(尹永奇)·조병철(曺秉徹)·최양옥(崔養玉) 등과 함께 박현경(朴賢景) 등 부호로부터 군자금을 모으다 같은 해 11월 일경에 체포되었...
-
화순군 동면 지도를 들여다 보면, 여느 전라남도 지역과는 다르다. 촘촘한 등고선이 이어지고, 화순천이 그 사이에 겨우 물길을 낸다. 말 그대로 산간 오지이다. 그런데 충의로와 화순선 철도를 따라 제법 큰 마을들이 이어진다. 탄광 마을들이다. 탄광 마을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척박한 토양과 경작지가 좁은 오지인데도,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단다. 다양한 성씨의 외지인이...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순군 동면 천덕리는 십천·성덕(聖德)·샘골[泉洞]·동암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천덕리의 지명은 샘골 마을의 천(泉)자와 성덕 마을의 덕(德)자를 각각 취하였다. 동암 마을은 동암 탄광의 개발과 함께 명명된 지명으로 탄광의 이름을 취하여 동암 마을이라고 하였다. 십천 마을은 원래 여울내골이라 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에 있었던 극장. 천운장 극장은 마을 이름을 따와 부른 것으로 공식명칭은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이다. 천운장 극장은 화순 광업소에서 1㎞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였다. 화순 광업소 복지문화관을 천운장 극장으로 칭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화순군 동면 오동리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화순군 동면은 화순군 중...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청년들이 일으켰던 사회 운동.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통치 속에서 결사의 자유가 일부 허용되며, 화순군에는 1920년 이후 다양한 청년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청년 단체는 1920년대 중반까지 화순면·능주면·동복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는 1908년과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통합되기 이전 옛 지역들의 분절적인 사회 조직...
-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유지 및 청년들이 결성·운영했던 사회 운동 단체. 화순 청년회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 정치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출범했다. 기록상 화순군 화순면[현 화순군 화순읍] 최초의 청년 단체는 1920년 4월 화순 유지들의 찬조를 받아 화순 보통 학교 교사인 국진호와 정준호가 설립한 화순 청년 구락부였다. 화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