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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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午陰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환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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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구간 | 오음리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
유물 및 유적 | 호남탄좌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4.1㎢ |
가구수 | 87가구 |
인구[남,여] | 176명[남자 87명, 여자 89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한천면 오음리는 오산(午山)·산음(山陰)[가리실]·삼거리·돗재의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오음리의 지명은 오산 마을의 오(午)자와 산음 마을의 음(陰)자를 각각 취하여 오음리라 하였다. 오산 마을은 처음에 금오산(金鰲山) 아래에 있으므로 오산(鰲山)이라 했는데 마을에서는 용암산의 줄기가 마치 자라가 목을 내민 것 같이 생겼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고 전한다. 또 마을 뒷등을 자라등이라고 불렀고 이에 따라 마을도 자라등으로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오산(鰲山)이라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간략화해 표기하며 오산(午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산음 마을은 정유재란시 피난처로 가루쇠골·가루실·가리실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산음 마을은 쇳물 덩어리가 출토되고 있는 곳이다. 그 후 낮에도 산그늘이 일찍 진다고 해서 산음이라 했다고 전한다. ‘가리실’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산을 가린다는 의미로 메 산(山), 그늘 음(陰)을 각각 취하여 ‘산음’이라 하였다 전해진다.
삼거리 마을은 이곳이 돗재 가는 길, 산음 가는 길, 오산 가는 길로 나누어지므로 이곳을 삼거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돗재 마을은 한천면 영내에서 반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개 이름을 따서 돗재 마을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동면(東面) 오산리(鰲山里)·산음리(山陰里)로 나오며 1867년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금오면(金鰲面),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綾州郡) 한천면(寒泉面) 오산리(午山里)·산음리(山陰里)로 나온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화순군(和順郡) 한천면 오음리[오산리·산음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오음리 남쪽에 성재봉[514m]·노인봉[530m]과 같은 비교적 높은 산지가 솟아 있고, 중앙부에 검설산[404m]이 이어지며 서쪽에는 태악산[524m]이 위치하는 구릉 지역이다. 서부에 한계천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흐르고 있다.
[현황]
오음리는 한천면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법정리이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면적은 14.1㎢이며, 87가구에 남자 87명, 여자 89명으로 총 17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한천면 동가리·반곡리, 서쪽으로는 한천면 한계리, 남쪽으로는 이양면 강성리, 북쪽으로는 동면 옥호리와 이웃하고 있다. 지방도 822호선이 동쪽 돗재에서 서쪽 한계리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와 복숭아 농사를 주로 짓는다. 주산물은 쌀이며 특산물은 복숭아와 자두이다. 1960년도부터 무연탄의 채광으로 광산 종업원이 이주해 와서 광산촌으로 번성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불경기로 폐광되자 인구가 급속히 감소했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부주 터[부주거리], 짐대 2기[짐대거리], 사기점 터, 가마 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