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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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綾州進士具三益上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문안식 |
[정의]
1702년(숙종 28)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지역 진사(進士) 구삼익이 을묘왜변 때 순절한 달량 권관(達梁權管) 조현(曺顯)[?~1555]의 정려를 요청한 일.
[개설]
조현은 1555년(명종 10) 5월 왜구가 70여 척의 선박을 타고 와서 을묘왜변을 일으켰을 때, 진압에 나섰다가 전사한 무신(武臣)이다. 그의 사후 조정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포상을 실시하였는데, 능주 지역 출신의 구삼익이 1702년(숙종 28)에 다시 조현의 정려를 세울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역사적 배경]
조현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희경(希慶), 호는 월헌(月軒)이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에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위치한 달량포의 권관으로 재직하였다. 왜적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창검에 맞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조현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포상을 실시하였고, 능주 지역의 관민들은 사당을 세우기도 하였다.
[경과]
조현의 전사 후 조정에서는 병조 참의에 추서하였고, 1573년(선조 11)에는 예조 정랑 구충연을 보내어 제향을 올리게 하였다. 1655년(효종 6)에는 능주 포충사에 향사(享祀)되었다. 1685년(숙종 11)에는 능주 지역 관민들이 조현과 함께 최경회(崔慶會)[1532~1593], 문홍헌(文弘獻)[?~1593]을 배향하는 능주 삼충각을 건립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능주의 진사 구삼익 역시 1702년(숙종 28)에 조현의 정려를 세울 것을 상소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구삼익의 상소는 전란의 위급함 속에서 충절을 다한 장수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정려를 세울 것을 건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