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530 |
---|---|
한자 | 和順更舞山獨立萬歲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광철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15일 - 화순 갱무산 독립 만세 운동 발생 |
---|---|
발생|시작 장소 | 화순 갱무산 독립 만세 운동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조국현|조경환|조기현|노충규|조병열|차성태 |
[정의]
1919년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연동 마을 근처 갱무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
[개설]
1919년 3월 15일 조국현의 주도로 일단의 청년들이 당시 화순군 화순면 소재지 인근의 야산인 갱무산에 올라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고 만세 사건으로 일부 참여자들이 체포되었다. 갱무산 독립 만세 운동은 화순 지역에서 3월 13일에 일어난 능주 장터 시위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난 만세 운동이었고, 화순읍 일원에서는 비교적 두드러진 만세 운동이기도 했다.
[경과]
갱무산은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연동 마을 북서쪽에 있는 해발 92m의 야산이다. 북쪽으로는 화순천을 건너 화순 읍내가 굽어보이는 위치에 있다. 갱미산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당시 24세였던 조국현은 갱무산 아래의 연동 서당에 다니고 있었다. 3월 15일 당일 조국현은 서당 친구들인 조경환·조기현, 그리고 연동 마을에 사는 노충규·조병열·차성태와 함께 갱무산에 올라갔다. 조국현은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치켜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화순 읍내의 헌병들은 현장에 출동했고 헌병들의 출동을 지켜본 조국현은 도주했다. 그러나 함께 산에 오른 조경환 등 나머지 5명은 헌병에 붙들려 곤욕을 치렀다.
[의의와 평가]
갱무산 만세 시위는 참가 인원이 적었고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했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화순 읍내에서는 음력 3일과 10일에 오일장이 열렸으나 3월 15일[음력 2월 14일]은 장날이 아니었다. 따라서 갱무산 만세 운동은 곧바로 화순 지역에 파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틀 전 능주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이었다는 점과 화순읍 일원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일어난 만세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