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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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鰲山城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최인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2월 29일 - 금오산성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8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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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금오산성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6년 6월 - 금오산성지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5월 - 금오산성지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완료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4월 6일 - 금오산성지 조선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12월 30일 - 금오산성지 조선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완료 |
소재지 | 금오산성지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일원 |
성격 | 성(城)|산성 |
소유자 | 화순군 |
관리자 | 화순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과 춘양면 경계의 용암산 정상부와 중턱에 있는 산성.
[개설]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잘 발달되어 현재 중부 이남에만 1,200여 개의 산성터가 남아 있다. 산성은 평상시에 군창(軍倉)을 두고 여기에 곡식과 무기를 준비하여 두며, 적이 침입하여 오면 평지의 주민들은 모두 들어오게 하여 농성하는 곳이다. 성이 위치한 지형에 따라 테뫼식과 포곡식으로 구분한다. 금오산성지는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화순군이 관리하고 있다.
[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능성현 산천조, 『동국여지지』[1656년] 능성현 산천조, 『여지도서』[1757~1765년] 능성현 산천조, 『능주목 읍지』[1789년] 고적조, 『대동지지』[1865] 권14, 능주 성지조 등의 기록에서 금오산에 석성 터가 있다고 확인된다. 금오산성의 규모와 시설에 대해서는 일제 강점기 때 편찬된 『능주 읍지』[1923년]에 “둘레는 3,515척[약 1,065m], 높이는 9척 5촌[약 2.8m], 성 안에는 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암혈이 있고, 옆에는 용천(龍泉)과 우단(雩壇)이라는 기우제 단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문헌 기록들의 내용이 단편적이어서 금오산성지의 역사적 유래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이 성을 ‘몽고 성지’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 몽고 침입 당시 축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후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다시 수축하였다고 하며, 군량을 쌓아 놓고 훈련하거나 기우소(祈雨所)를 설치하여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위치]
금오산성지는 화순군 한천면과 춘양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높이 544.7m의 용암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능주면에서 지방도 822호선을 따라 4㎞ 정도 가다 보면 한천면 한계리에 이르기 전에 용암사의 표시석이 있다. 용암사 동쪽 용암산 능선에 금오산성지가 있다.
금오산성지는 용암산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한계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춘양면 우봉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춘양면 부곡리와 접하고, 동쪽으로는 노인봉의 능선과 접하고 있다.
[현황]
금오산성지는 암반이 노출되어 단애 면이 발달된 바위산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개 가파른 능선과 암벽을 이용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석벽도 부분적으로 쌓고 있다. 동벽은 암봉이 연결되는 능선을 따르고 있어서 가파른 능선과 암벽을 이용하고 부분적으로 석벽도 쌓고 있다. 암벽 위에는 협축법, 산경사면은 편축법을 사용하였다. 현재 성벽은 등산로로 사용되기 때문에 훼손이 심하다. 남벽은 능선과 가파른 절벽을 이용하고 있다. 성벽은 산경사면을 깎아낸 후 협축했다. 성벽 중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문지 부근으로 현재 너비 5m, 높이 1m 정도이다. 서벽은 낮은 봉우리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을 따르는데 다른 성벽에 비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북벽은 능선을 가로질러 암봉으로 올라가는데 계곡과 절벽을 이용하고 있다. 성벽은 산경사면을 깎아낸 후 양쪽에 돌을 쌓은 협축이다. 성벽 중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남문 지 부근으로 높이 2.3m, 폭 4~4.5m이다.
건물지는 3개소로 추정되는데 북문 지 안쪽, 남문 지 안쪽, 용암산 북쪽 능선상의 평탄지이다. 건물 지에는 문루나 문지를 보호할 수 있는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건물지의 너비는 약 30×20m 정도이다.
금오산성지 주변에서 채집한 유물로는 회청색 경질 수키와 편, 백자 편, 회청색 경질토기 편 등이 있다. 성벽이 등산로로 사용되기 때문에 훼손이 심하여 석벽의 일부가 파괴되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격]
금오산성지는 용암산의 자연 암벽과 작은 계곡을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으로서 내부 활동 공간이 넓지 못한 약점이 있지만 성을 방어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벽은 능선이나 암벽을 이용한 협축성으로 정형성을 갖추지 못하지만 대체로 마름모꼴을 띠고 있다. 성벽은 높이 275~525m 일대에 분포하고, 주변에 있는 자연석을 가공하여 축조하고 있다.
성벽의 축조는 협축과 편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성벽은 내경사를 이루면서 축조하고 있는데 큰 성동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큰 성돌들이 움직이지 않게 하여 안정감 있게 축조하고 있다.
금오산성지는 서남쪽에 위치한 예성산성과 함께 북쪽의 능주면을 방어하는 것이 주목적인 성이었다고 판단되며,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내륙성,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석성, 평면 형상에 따라서는 폐합부정형성, 중복도에 따라서는 단곽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