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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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吳之湖生家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1길 48-1[독상리 277-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지민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9년경 - 화순 오지호 생가 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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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9월 19일 - 화순 오지호 생가 국가등록문화재 제274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화순 오지호 생가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화순 오지호 생가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1길 48-1[독상리 277-1] |
성격 | 생가 |
양식 | 민도리식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좌우 반칸 퇴] |
측면 칸수 | 2칸[전면 반칸 퇴] |
소유자 | 오승록 |
관리자 | 화순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등록문화재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화가 오지호가 태어난 근대 한옥.
[개설]
화순 오지호 생가는 한국 근대 서양 화단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오지호(吳之湖)[1905~1982]의 생가이다. 그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의 동경 미술 학교 유학 후 한동안 이곳에서 기거 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한편 오지호가 조선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54년부터 타계하기까지 살았던 가옥[초가, 정면 4칸]도 광주광역시 지산동에 있다[광주광역시 기념물 제6호]. 본 가옥의 처음 건립은 오지호의 6대조 호군공(護軍公)이 57세에 상량했다는 기록이 있어 생가의 건립 연도는 1800년도 초쯤으로 여겨진다.
[위치]
화순 오지호 생가는 멀리 동복뜰이 조망되는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위치는 본래 동복 향교 자리였기 때문에 지대가 높고 주변 경관도 뛰어나다. 현재 경내에는 향교 시절에 심었다는 수령 400년 정도의 은행나무가 있다.
[변천]
화순 오지호 생가는 2003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 9월 1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안채는 본래 초가지붕이었으나 1989년경에 현재의 기와지붕으로 교체가 되었고 목구조와 창호 등도 처음 건립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작업이 있었다.
[형태]
화순 오지호 생가는 넓은 대지 안쪽에 안채가 있고 그 앞에 사랑채가 있다 안채 뒤편에는 오씨 4대를 봉사하는 사당도 있다. 안채는 ‘ㅡ자’형 팔작 지붕이며 규모는 정면 5칸[좌·우측 반 칸 퇴 별도], 측면 2칸[전면 반 칸 퇴 별도]이다. 내부는 좌측으로부터 부엌, 안방, 대청, 작은방 순으로 꾸며져 있고 구조는 막돌 초석 위에 방주를 세운 민도리 형식이다. 사랑채는 ‘ㅡ자’형 우진각집이다. 규모는 정면 7칸이며 구조는 안채와 같은 민도리 형식이다. 이 건물은 좌측 3번째 칸을 대문간으로 사용하는 등 문간채 역할도 한다.
[현황]
전반적으로 관리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사랑채가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있고 안채에는 현재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화순 오지호 생가는 건축사적 가치보다는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개척한 오지호의 생가라는 차원에서 주목이 되는 가옥이다. 인근의 오지호 기념관과 함께 관광 자원화 할 수 있는 유적이다. 현재 여러 곳이 훼손되어 있는 사랑채의 보수와 함께 담장, 조경 등의 시설 정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