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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038
한자 善行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덕진

[정의]

화순 일대에서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

[개설]

선행인(善行人)이란 타인에게 착한 행실을 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러한 사람으로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한 사람, 기근이 들었을 때에 곡물을 내어 기아자를 구제한 사람, 향교에 재산을 희사하여 교육을 도운 사람, 오갈 데 없는 어린이나 노인을 부양한 사람, 타인의 밀린 세금을 대납한 사람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기근이나 재해 및 질병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제한 사례가 가장 많이 확인되고 있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주민들은 선행을 베푼 사람의 행적을 공적비에 새기거나 읍지에 기록하여 오래도록 기리었다.

[활동]

문영찬(文永瓚)[1759~1815]은 화순군 도곡면 백암 마을 출신인데, 지석강 상류에 개와보를 축조하여 주변 농지에 용수를 공급하였고, ‘갑술대기’로 불리는 1814년(순조 14) 대기근 때에는 곡식 수십 석을 내놓아 동네 주민들을 구휼하였다. 이런 사실을 기억한 후대 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화순 읍지』, 『화순군의 마을 유래지』 등에 수록하여 전승하였다.

정순백(鄭淳伯)[?~?]은 본관이 하동, 자는 권숙(權淑), 호는 서은(瑞隱)이다. 1914년에 화순 향교를 중수할 때에 재물을 희사하여 1개월에 걸친 건물 보수 공사를 마치게 하였으며, 또 땅 두마지기를 희사하여 석존제 제수비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 사실은 향교 내의 만화루(萬化樓)의 ‘교궁 신수기(校宮新修記)’라는 현판에 새겨져 있다.

도암면 용강리 출신의 박준규(朴準揆)는 추석이면 고을 어른들에게 반찬을 드리고, 같은 마을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글방 학생들도 도와주고, 자기 마을의 호세(戶稅)라는 세금도 모두 부담하였으며, 이웃 이양면 마을에 불이 나 집이 소실되자 많은 돈을 내어 집을 지어주었다. 이를 아름답게 여긴 면민들이 ‘신암 밀양 박공 준규 실적비’라는 공적비를 세웠다.

1877년(고종 14) 4월에 화순 사람들이 화순읍 계소리 도로변에 ‘오위장 김규문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문 내용은 “흉년에 고을 사람들의 세금(稅金)을 부담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내어 스스로 부담하니, 고을 사람들이 그 은덕(恩德)을 칭송함이 높은 산과 길이 흐르는 강물처럼 한없이 영원하리라”라고 적혀 있다. 김규문(金奎文)이 대기근이 들자 고을 사람들 세금을 대납하였다. 이는 5월 29일자 『고종실록』에도 화순현에 사는 전 오위장(五衛將) 김규문이 자원하여 자기 현의 전세, 포량, 잡비 등 쌀 471석, 콩 229석을 대신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공로로 그는 이듬해에 사천 현감에 임명되었다.

이외에도 김재수, 김현리, 문계환, 송추, 양효용, 최홍이 등이 화순군 일대에서 선행인으로 지금까지 회고되고 있다.

[의의]

이처럼, 화순군에서는 저수지 축조, 기아자 구휼, 건물 보수, 교육비 희사, 재난 구호, 빈민 구제, 세금 대납 등의 선행을 한 사람들이 확인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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