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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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一燮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희순 |
출생 시기/일시 | 1929년 - 한일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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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한일섭 국극협단에 입단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 한일섭 국악협주단 조직 |
몰년 시기/일시 | 1973년 - 한일섭 사망 |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
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출신의 국악인.
[개설]
한일섭(韓一燮)[1929~1973]은 「아쟁 산조」와 「호적 산조」를 발표함으로 민속악 연주곡을 넓히는데 공헌한 명고수이다. 할아버지는 대금과 가야금의 명인 한덕만이고, 아버지는 한경태이며, 작은 아버지는 판소리 명창 한성태이다. 사촌 형제는 창극배우 한갑순, 중요 무형 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 보유자 한갑득과 한승호이다. 그의 부인은 판소리 명창 남해성이고, 아들은 피리 연주자 한세현이다.
[활동 사항]
한일섭(韓一燮)은 매형이자 성창순 명창의 부친인 성원목으로부터 판소리를 사사하였다. 대금, 피리, 태평소, 가야금, 거문고 등 악기에 능숙하였다. 1947년 박후성의 국극 협단에 입단 창극단의 반주 악사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1952년 국악사의 악사장을 겸하면서 아쟁으로 무대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1958년 화랑 여성 국극단에서 모든 공연 작품을 편곡하고 단원들을 지도하며 여성 국극단의 악사장을 지냈다. 이때 신민요인 「금강산 타령」, 「동백 타령」, 「신 풍년가」 등을 작곡하였다. 1960년 상경하여 국악 협주단을 조직하고 아쟁 산조의 많은 제자를 양성하면서 1968년 국악 예술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북가락이 정확하고 가락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고제 고법의 풍모가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명고수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특히 박동진, 김연수 등과 자주 호흡을 맞췄다.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박대성, 박종선, 윤윤석 등에게 아쟁을 가르쳤으며, 이생강에게 관악기를, 김청만에게 아쟁과 고법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