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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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于勒 |
영어음역 | U Reu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삼국 시대 제천에서 활동한 음악가.
[개설]
우륵(于勒)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雜志)에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 이르기를 가야국(加耶國)의 가실왕(嘉實王)이 당(唐)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달라 성음을 어찌 일정하게 하는가 하며 이에 성열현(省熱縣) 사람 악사 우륵(于勒 )에게 12곡을 만들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륵은 지금의 고령에 있었던 대가야 출신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편에서는 청풍 지역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즉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성열현’을 지금의 청풍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에서는 “‘성열’은 ‘사열’이니 지금의 청풍이다. 우륵이 청풍과 충주에서 놀았다”라고 하였다.
[활동 사항]
우륵은 본래 성열현(省熱縣) 사람으로 가야국(加耶國) 가실왕(嘉實王)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한다. 551년(진흥왕 12) 신라에 투항하여 제자 이문(尼文·泥文)과 함께 낭성(娘城)에 살다가 진흥왕에게 알려져 하림궁(河臨宮)에서 이문과 함께 새 곡을 지어 연주하였다. 이에 감동한 진흥왕의 배려로 국원(國原)[충주]에서 살게 되었고, 552년 대내마(大奈麻) 계고(階古)와 법지(法知), 대사(大舍) 만덕(萬德) 등 세 사람에게 각각 가야금·노래·춤을 가르쳤다.
그 후 진흥왕의 명에 따라 가야금곡이 궁중 음악이 되고, 하림조(河臨調)·눈죽조(嫩竹調) 2조(調)가 생겨 모두 185곡의 가야금곡이 남게 되었다.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 조성과 관련하여 진흥왕 때 악성(樂聖)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저술 및 작품]
우륵이 가야국에서 지은 12곡은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상기물(上奇勿)」, 「하기물(下奇勿)」,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등으로 이들 곡 이름은 대부분 당시 군·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