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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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周天子墓-龍潭瀑布 |
영어음역 | Jucheonjamyowa Yongdampokpo |
영어의미역 | Emperor of Zhou dynasty's Grave and Yongdampokpo Waterfal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명환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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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관련 지명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
채록지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
성격 | 전설|풍수담|신이담 |
주요 등장 인물 | 주천자|신하 |
모티프 유형 | 금수산에 묘를 쓴 주천자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에서 주천자묘와 용담폭포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주천자묘와 용담폭포」는 주나라 황제가 어렵게 구한 금수산의 절세의 명당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자 금수산의 신룡(神龍)이 산을 부정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승천했다는 풍수담이자 신이담이다.
금수산은 수산면 상천리에 있는 명산이다. 문자 그대로 비단으로 수놓은 것처럼 산자수려한 산이다. 녹음 속을 흐르는 계곡물과 기이한 바위, 그리고 깊은 계곡에는 예부터 시인 묵객이 끊이지 않았다. 금수산 정상에는 주인을 모르는 무덤이 있고, 이를 주천자묘(周天子墓)라고 한다. 산기슭 백운동에는 높이가 백여 자나 되는 용담폭포[일명 용추폭포(龍湫瀑布), 용소폭포(龍沼瀑布)]가 있는데, 주천자가 금수산에 묘를 쓴 후 용이 승천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옛날부터 아들 없는 부인이 이 묘를 벌초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오월 단오가 되기도 전에 많은 여인들이 벌초를 하여 이 무덤의 잔디는 항시 윤기가 흐른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다. 또한 1999년 한국국악협회 제천시지부에서 간행한 『전설지』와 2004년 제천시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제천시지』 등에도 이를 참고하여 동일하게 수록하고 있다. 1982년 『전설지』에는 주천자 묘를 주(朱)씨 성을 가진 명나라 황제의 묘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기록하였다.
[내용]
중국 주나라 황제가 하루는 동쪽을 마주하고 세수를 하기 위해 대얏물에 손을 담그려 하니, 물 위에 웅장한 산 그림자가 비치고 있었다. 놀란 황제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주위에는 산이 없었다. 황제는 대얏물에 비친 산을 찾으라고 신하를 동쪽으로 보냈다.
신하들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곳이 금수산이었다. 한 눈에 명산임을 알고 정상에 올라 보니, 역시 능강구곡과 한강이 어우러진 절세의 명당이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봉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남쪽 기슭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사는 신룡이 주나라 신하가 와서 신성한 산을 부정하게 만들었다고 하며, 청천벽력과 함께 승천해 버렸다. 이런 까닭에 정상의 무덤을 ‘주천자묘’라 하고, 용이 승천한 못을 ‘용담’ 또는 ‘용소’라고 한다. 웅덩이 세 개는 용의 발자국이라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주천자묘와 용담폭포」의 주요 모티프는 ‘금수산에 묘를 쓴 주천자’이다. 주천자는 중국 황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주천자묘가 왜 여기 있는지, 주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주천자묘라고 일컫는 무덤은 다른 지역에도 있다. 명나라 황제인 주원장(朱元璋)[1328~1398]의 선조가 조선 사람이라는 이야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인 이여송(李如松)[1549~1598]이 조선의 산세가 좋아 앞으로 큰 인물이 나지 않도록 산맥을 끊기 위해 묘를 썼다는 이야기 등도 전한다. 묘가 영구적으로 보존되도록 “성묘하면 복 받는다.”, “성묘하면 아들 낳는다.”라는 이야기를 함께 수반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주나라의 황제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외부인이라는 인식을 용의 승천으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