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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075
한자 將帥-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산 68-1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큰 굴.

[명칭유래]

장수굴(將帥굴)은 장수와 굴로 나뉜다. 장수는 장수고개·장수골·장수굴·장수내·장수논·장수동·장수바우·장수배미·장수샘 등 여러 지명에서 전부 요소로 쓰이는데, 대부분 장수(將帥)와 관련된 유래설이 있다. 사곡리에 있는 장수굴은 신라 진평왕 때 17세의 김유신(金庾信)이 목욕재계하고 이 석굴에 들어가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자 신인(神人)이 나타났으며, 그의 도움으로 무술을 닦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장수굴이 한 번 울었는데, 그때 울창했던 수목이 하루 사이에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자연환경]

장수굴은 이월면 사곡리 이곡마을[은행정마을] 서쪽에 있는 바위인 굴암(窟岩) 안에 있는 굴이다. 지금은 높이 2.7m, 너비 7m의 굴 입구만 드러나 있을 뿐 산 위에서 흘러내린 모래흙에 덮여 매몰된 상태로 내부를 알 수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 41권 「열전」 제1에 나오는 중악(中嶽)의 석굴로 추정된다.

[현황]

장수굴 옆 북동쪽을 향한 화강암 바위벽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높이 7m의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鎭川沙谷里磨崖如來立像)이 양각되어 있다.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육계(肉髻)가 큼직하며, 양쪽 귀는 어깨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상호(相好)는 비대한 편이나 눈은 반개(半開)하였고 굳게 다문 입술에 미소가 어려 자비가 넘친다. 목에는 삼도(三道)[주름]가 뚜렷하고 어깨와 가슴이 당당하다.

법의는 통견(通絹)으로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옷깃을 잡고 오른손은 내장(內掌)하여 가슴에 대고 있다. 발 아래에 연화좌(蓮花座)가 없고, 앞에 사각형의 장대석 두 개로 예배석(禮拜石)을 만들어 놓았다. 돋을새김이 강하고, 당당한 어깨와 아름다운 옷의 무늬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신라 마애불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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