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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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川大母山城 |
이칭/별칭 | 대모산성,할미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산 1-4|2-1~2|2-4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상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12월 14일 - 진천대모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제8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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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천대모산성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성곽|산성|토성 |
양식 | 포곡식 |
건립시기/연도 | 5세기 말 |
높이 | 약 4.5~4.7m |
둘레 | 약 1,259m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산 1-4|성석리 2-1|성석리 2-2|성석리 2-4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개설]
진천대모산성은 616년(진평왕 38)에 백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모산성(母山城)으로 비정하려는 설이 있으나 대모산성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지리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일제강점기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상산지(常山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가 모두 비슷한 견해를 보이며, 진천읍 성석리 마을에서는 진천대모산성을 속칭 ‘할미성’이라고도 부른다.
[건립경위]
진천대모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토성으로서 진천의 치소(治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안의 경작지에서 여러 점의 숫돌이 채집되기도 하여 선사시대 이래 오랫동안 경작이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 준다. 축성 연대는 대략 5세기 말로 짐작되며, 6세기 이후에는 산성의 기능이 상실되고 대신에 문안산성(文案山城)과 도당산성(都堂山城)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으로 보아 대모산성은 조선시대까지 토성의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토성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진천읍내에서 덕산면 방향으로 국도 21호선을 따라가다가 보면 진천여자중학교가 나오는데 그 맞은편 도로 동쪽의 낮은 야산에 위치한다. 진천읍내 동쪽으로 넓게 형성된 속칭 ‘덕문이들’ 평야를 앞에 두고 있는 낮은 구릉지이다.
[형태]
진천대모산성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동북쪽의 진천평야로 둘러싸인 해발 50m의 나지막한 구릉지형 야산에 쌓은 토성이다. 낮은 능선의 지형을 이용하여 북쪽을 높게 구축하고 남향의 계곡을 감싸고 있어 포곡식 산성이라 할 수 있으나 거의 평지형에 가까운 토성이다.
동서로 이어지는 11개의 봉우리를 연결한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북벽으로 삼고, 서쪽 끝의 낮은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달리는 능선을 서벽으로 하며, 북벽 중앙의 봉우리에서 서벽과 거의 평행하는 능선을 중벽으로 삼고, 동쪽 끝의 봉우리에서 중벽과 거의 평행하는 능선을 동벽으로 삼은 후에 이 벽들의 남쪽 끝 사이를 막아 남벽을 만드는 등 지형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다.
학술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북벽의 최고봉에서 남서쪽 계곡의 중간 부분까지 감싸고 구축한 부분을 내성, 앞의 내성과 그 앞의 계곡을 구릉지 끝까지 감싸고 동서의 능선부에 성벽을 구축한 부분을 모두 합하여 본성이라 하고, 이 본성의 동벽 남북단에서 그 동쪽으로 크게 능선을 감싸고 축조한 부분을 외성으로 보았는데, 실측한 둘레가 내성은 416.4m, 본성은 609.6m, 외성은 649.2m로서 본성과 외성의 합계는 약 1,259m이다.
본성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남문은 그 폭이 약 13m나 되는데, 1980년경에 성안을 개간하면서 남벽을 파괴하여 남문과 서벽 사이의 성벽은 유실되었다. 이 부분은 길이가 약 53m로 지금은 40도 정도의 경사에 높이 4.7m의 외벽만이 남아 있고, 내벽은 평지가 되어 성안과 같은 높이로서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개간 전에는 외벽이 경사 40도에 높이 6.3m, 상부 폭 3.5m였으며, 내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큰 못으로 연결되고, 성안이 남벽 윗부분과는 약 4m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남벽의 하부 폭은 남서 모서리 지점의 단면으로 보아 약 16m 정도로 추정된다.
본성 남벽의 동반부는 능선이 거의 끝나고 상당히 낮아진 곳이기 때문에 외벽은 55도 경사에 높이가 12m, 내벽은 35도 경사에 높이 5.9m, 상부 폭 2.7m로 높게 축조되었다. 이처럼 축조에 주의한 것은 남문을 통하여 침입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서 기능상으로 적대(敵臺)와 같은 구실을 한 것인데, ‘V’자 모양으로 옹성 형태를 취하면서 이곳을 크게 보강하고 있다.
본성의 남문 안 서쪽의 평지에는 본래 큰 연못이 있어 항상 물이 고이고 밭으로 이용할 당시에도 계단을 만들어 경작하였는데, 남벽을 넘어오는 적에 대한 방어와 우마의 급수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안의 우물물과 흐르는 물을 일단 큰 못 안으로 흘러들게 한 다음 남문 밑으로 만든 수구를 통해 성 밖으로 빠지게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진천대모산성 남쪽에는 속칭 ‘배머리보’라 불리는 해자(垓子)가 있어 구봉마을 앞에서 백곡천의 물이 이 산성 앞을 감싸듯이 흐른다. 지금은 백곡저수지의 수로가 이곳을 통과하여 옛 모습을 잃었으나, 본래는 폭 2~3m 정도로서 대모산성의 해자 및 관개용으로 겸용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이처럼 대모산성은 구조면에서도 대지와 해자를 구비하는 등 허술함이 없어 평지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하는 약점을 최대한으로 보강하였다.
본성 남벽의 서쪽 약 53m의 성벽은 1980년경에 공사를 하면서 아랫부분만 남기고 파괴되었다. 이로 인하여 끊어진 남벽이 북으로 꺾이어 서벽에 이어지는 지점에서 판축으로 축성한 부분이 드러났는데, 확인 결과 성벽의 하부 폭은 약 16m였으며 현재의 높이는 4.5m이다.
[현황]
진천대모산성은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국가적인 보호를 받고 있으나 이미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산성에 대한 복원이나 정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현존하는 성벽이 자연 지형의 능선처럼 보이는 상태로 남아 있다. 남쪽 부분은 성벽이 거의 유실되고 성안과 밖은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성안의 어디에서나 다량의 삼국시대 토기편이 수습되고 있는데, 대부분 백제 계통으로 무문토기·회색 타날문토기[두드림무늬 토기]·연질 타날문토기·회청색 경질토기의 조각들과 우각형 파수부편(牛角形 把手部片) 및 숯 등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이 밖에 토기 제작에 사용되는 도계가 발견되어 주목되며, 외성의 서북쪽 기슭에는 야철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안의 경작지에서 여러 점의 숫돌이 채집되기도 하여 선사시대 이래 오랫동안 경작이 이루어졌음을 확인시켜 준다.
[의의와 평가]
진천대모산성은 진천에서 이월 방면과 증평 방면으로 가는 도로와 인접해 있어 교통의 요지이며, 동북쪽에는 미호천이 흐르고 남쪽에는 백곡천이 흐르는 넓은 평야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진천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주목받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