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431 |
---|---|
한자 | 李大建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승 |
성격 | 신도비 |
---|---|
건립시기/일시 | 1658년 |
관련인물 | 이대건(李大建)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50㎝ |
너비 | 85㎝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 |
소유자 | 경주이씨 종중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대건의 신도비.
[개설]
이대건(李大建)의 본관은 경주로, 고려 후기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들이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시발(李時發)이다.
[건립경위]
이시발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운 데 이어 1596년(선조 29)에는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고, 1624년(인조 2) 체찰부사로서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자 조정에서 아버지인 이대건에게 의정부좌찬성을 추증하였다. 이에 경주이씨 문중에서 1658년(효종 9) 이대건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진천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 증평 방향으로 가다가 초평농공단지를 지나면 초평면 용정리가 나온다. 이대건 신도비는 마을 안에 아들 이시발 신도비와 함께 ‘쌍오비각’이라고 편액한 보호각 안에 세워져 있다.
[형태]
방형 대석 위에 높이 150㎝, 너비 85㎝, 두께 25㎝의 오석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올렸다. 이수의 앞면은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이며, 뒷면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는 한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좌의 앞면은 둘로 구분하여 인동과 연화문을 새겼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 ‘증이조판서성균진사이공신도비명(贈吏曹判書成均進士李公神道碑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알 수 없으며, 글씨는 최입공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