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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18
한자 鎭川玉城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방어 시설|보루
건립시기/연도 삼국~고려시대
둘레 246.3m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오미마을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삼국~고려시대 보루.

[개설]

1992년 청주박물관에 의해 문백면 오미마을에서 회청색 경질토기 등이 채집되었다. 채집 유물과 입지 조건을 고려할 때 누각이나 정자 등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2002년 발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옥성리 유적은 고려시대에 일시적으로 사용된 방어 시설, 즉 보루로 추정되었다. 유적 내에서는 저장 시설과 용도 미상의 구덩이 시설, 방어 시설과 조선시대에 조성된 회곽묘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기와편, 토기편이 다수를 이루고 석제품과 금속제품 등도 소량을 차지한다.

[건립경위]

유적의 주향은 북쪽이고 둘레는 246.3m이며 평면상 ‘T’자 형태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곳은 진천읍부터 청원군 오창까지 형성된 넓은 평야지대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이 일대의 관망이 용이하고 청주에서 진천과 죽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길과 진천~천안으로 통하는 교통로가 모두 이곳을 지나고 있어 옛부터 지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농다리를 거쳐 증평~괴산으로 통하는 길과 진천읍 잣고개를 거치지 않고 진천읍내로 우회하는 길의 분기점이기도 하여 여러 교통로의 길목 역할을 하는 중요 요충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이곳은 양천산에서 서남부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산 정상부 양천산성과의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잣고개를 넘어 양천산성의 서쪽과 남쪽을 지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을 통과해야 하므로 이를 감시하기 위한 보루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위치]

진천읍에서 국도 17호선을 이용하여 오창 쪽으로 가다가 문백면 면소재지를 지나 옥성교를 건너면 왼쪽으로 오미마을이 보인다. 이 유적지는 오미마을 옆 해발 90m정도의 작은 구릉 정상부 밭에 해당한다.

[형태]

보루로서의 특성은 유적의 외벽을 따라 경사면을 삭토한 흔적과 목책이나 목익과 같은 방어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단이나 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적의 외벽을 삭토한 흔적은 유적의 북쪽과 동서쪽, 남동쪽, 남서쪽의 바깥 면에서 확인된다. 비탈면의 상단부를 삭토하여 경사를 급하게 하고 삭토한 아랫면을 단으로 만들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목책이나 목익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단의 높이는 1~4m이고 폭은 1~3.8m이다. 유적 내에는 길이 약 56m의 구를 조성하였다. 유적이 주로 활용되었던 시기는 몽골이나 홍건적, 왜구의 침입이 빈발하던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기존 성곽 시설의 정비와 함께 새로운 방어 시설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유적 내에서 출토되는 기와류의 제작 시기가 고려 후기로 추정되는 점도 이를 증빙한다. 출토된 유물의 제작 시기는 여러 시기상을 보여주고 있으나 고려 후기의 제작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다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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