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6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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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鐘學 |
영어음역 | I Jonghak |
이칭/별칭 | 중문(仲文),인재(麟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호수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인재(麟齋).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이자성(李自成)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낸 가정(稼亭) 이곡(李穀)이다. 외할아버지는 권중달(權仲達)이며,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오른 목은(牧隱) 이색(李穡)이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종덕(李種德)이 있다. 부인은 이춘부(李春富)의 딸이다. 후손들이 이종학이 반 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사지마을에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활동사항]
이종학(李鐘學)[1361~1392]은 개경의 한천동(寒泉洞)에서 태어났다. 1374년(공민왕 23) 14세로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1376년(우왕 2)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장흥고사(長興庫使)에 제수되었다. 1388년(우왕 14) 지신사(知申事)로 성균시를 주관하여 맹사겸(孟思謙) 등 99인을 뽑았다. 뒤이어 첨서밀직사사(僉書密直司事)가 되었으며, 우대언(右代言)으로 요동정벌군이 출정하기 전에 조병육정신(助兵六丁神)[군사를 음조(陰助)하는 6정신]에게 초례(醮禮)를 행하였다.
1389년(창왕 1) 후덕부윤(厚德府尹)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시(進士試)를 주관하여 김여지(金汝知) 등 33인을 뽑았다. 곧바로 승진하여 첨서밀직사사와 동지공거를 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이색이 정권의 핵심에 있으면서 두 해에 걸쳐 과거를 관장하자 사람들에게 시기를 당하여 공양왕 즉위와 더불어 탄핵을 받자 함께 파직되어 순천으로 유배되었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彛)와 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 부자가 모두 청주의 옥에 갇혔다. 때마침 난 홍수에도 부자가 무사하자 하늘의 뜻이라 여겨 사면되었으나, 이듬해 다시 원지(遠地)로 유배되었다.
이후 다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1392년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된 뒤 그 무리로 몰려 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순군옥(巡軍獄)에 갇혔다가 함창(咸昌)에 유배되었다. 이 해에 조선이 개국하면서 정도전(鄭道傳) 등이 사사로이 손흥종(孫興宗)을 시켜 살해하려고 하였는데, 문생인 김여지가 판관으로 있으면서 비호하여 무사하였다. 그러나 장사현(長沙縣)으로 이송 중에 다시 손흥종에 의해 무촌역(茂村驛)에서 교살(絞殺)되어 향년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인재유고(麟齋遺稿)』가 있다. 1519년(중종 14) 5세손 이자(李耔)가 이유청(李惟淸)의 집에서 유고(遺稿)를 얻어 1책으로 편집·선사(繕寫)하였다. 이를 다시 1650년(효종 1) 10세손 이태연(李泰淵)이 노준명(盧峻命)의 집에서 이자의 선사본(繕寫本)을 얻어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책은 불분권(不分卷) 1책의 시문집으로 남행록(南行錄), 관동록(關東錄), 남천상산록(南遷常山錄), 부록(附錄), 발(跋)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창작 순서로 실려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소남면 유덕리 왕릉동(王陵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
선조 대에 신원(神寃)되고 문헌서원(文獻書院)에 제향되었다. 이외에도 진천군 이월면 노은리에 창건된 백원서원(百源書院)에도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