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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71
한자 林賢
영어음역 Im 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호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성별
몰년 1619년연표보기
본관 상산(常山)
대표관직 훈련원주부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상산(常山).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임수전(林秀筌)이다.

[활동사항]

임현(林賢)[?~1619]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임수전이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참전하여 비명에 돌아가신 것을 애통하게 여겨 남쪽을 향해 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전사한 경기도 죽산 봉성(鳳城)을 지날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통곡하였다. 또한 “밤낮으로 쌓은 땔나무 단이 짓밟히고 섞어진다 한들, 어찌 남적[왜적]이 우리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를 잊으리오. 충신은 해골조차 죽산들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니, 천년을 통곡한들 업(業)을 세울 수 없으리라[日夜薪臺履又腐 豈忘南賊殺吾父 忠骸未返竹山郊 痛哭千年業未樹]”라는 시를 지어, 아버지의 충절을 기리며 원수인 왜적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기도 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여진족 건주위의 추장 누르하치가 후금(後金)을 세우고 명나라의 무순을 공격하자, 명나라에서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은혜를 생각하여 진녕군(晉寧君) 강홍립(姜弘立)을 오도도원수(五道都元帥)로 삼아 1만 3,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병하였다. 당시 임현은 좌영장 김응하(金應河)의 휘하로 출병하여 이듬해 2월 압록강을 건너 명군과 합세하여 후금 군대를 공격하였다가, 오히려 작전의 차질로 부차성(富車城)에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때 김응하를 비롯하여 10여 명의 장수와 많은 군사가 전사하였는데, 임현도 이때 버드나무 아래에서 최후를 마쳤다.

[상훈과 추모]

1699년(숙종 25) 관찰사 송규렴(宋奎濂)의 품신으로 아버지 임수전에게는 형조참의가, 임현에게는 공조참의가 각각 증직되었다. 1721년(경종 1) 임수전임현 부자에게 충신문의 정려가 내려졌다. 임수전 부자 충신문은 현재 문백면 구곡리에 건립되어 보존되고 있다. 정려문 왼쪽에는 ‘상산임공부자충신비(常山林公父子忠臣碑)’라는 사적비가 있는데, 1967년 세운 것으로 비문은 팔계 변영인(卞栄寅)이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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