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39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희돈 |
성격 | 희곡 |
---|---|
작가 | 조명희 |
창작연도/발표연도 | 1921년 7월 |
[정의]
1921년 7월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조명희가 발표한 희곡.
[개설]
「김영일의 사」는 1921년 7월에 발표된 작품으로, 동경에 유학 중인 가난한 학생 김영일의 참담한 삶과 죽음, 즉 일제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고통과 저항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발표 후 동우회 순회연극단이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1923년 2월 동양서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구성]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행상 길에 나섰던 학생 김영일은 길거리에서 거액을 줍고 이 돈의 반환 여부를 놓고 고민하지만, 같이 고학하는 친구들은 이 돈의 반환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결정에 따라 같은 서클의 동인이며 돈의 주인인 전석원에게 주운 돈을 돌려준다.
전석원의 집에서 돌아온 김영일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 준비를 서두르지만 여비를 해결할 길이 없다. 김영일은 전석원에게 사정해 보기로 하고 친구들과 그를 찾아가지만, 사정을 들은 전석원은 청을 냉담하게 거절한다. 전석원의 인정 없는 모습에 분개한 김영일의 친구들과 전석원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이것이 사상 논쟁으로까지 확대되어 격투가 벌어진다. 이때 박대연의 주머니에서 불온 삐라가 떨어지게 되고, 신고를 받고 온 일본 경찰은 김영일과 친구들을 구속한다. 심한 고문과 영양 결핍 등에 시달린 김영일은 급성폐렴이 발병하게 되어 풀려나지만, 그날 밤 유언을 남기며 한 많은 생애를 마친다.
[특징]
「김영일의 사」는 학생극 운동의 성격을 띠었지만 민족주의 신극 운동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의의와 평가]
「김영일의 사」는 1923년 김영보의 『황야에서』에 뒤이어 한국 근대 희곡사상 두 번째로 단행본으로 간행이 되었다. 하지만 『황야에서』는 수록된 작품 모두가 번안물인 데 비해 조명희의 「김영일의 사」는 창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으며, 연극으로 공연된 시기 또한 앞선다는 점에서 희곡사적 의미는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