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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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百源書院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종진 |
성격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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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후연 |
창작연도/발표연도 | 조선 후기 |
[정의]
조선 후기 이후연이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던 백원서원에 대해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백원서원(百源書院)은 1606년 개성유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이 낙향한 뒤 세종 대의 효자 김덕숭(金德崇)과 이여·이부(李阜)를 제향하기 위해 1608년에 세운 서원이다.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며, 현재는 사적비만이 남아서 서원 터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내용]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시냇물 소리 들리는 곳에[俯臨幽澗仰高山]
우뚝 솟은 서신이 이 사이에 있구나[院字巋然在此間]
종일토록 벗들과 한자리에 앉아서[鎭日朋簪圍四坐]
글 이야기 유도 이야기에 참으로 조용하구나[論文講道是眞門]
비 내리니 만진이나 되는 산에 쌓인 티끌, 깨끗이 씻었구나[雨洗塵埃萬仞山]
수근이 되는 깨끗한 물이 그 사이에서 흘러내리네[百院活水出其間]
콸콸 흐르는 물은 부진도한데[滾滾餘波流不盡]
여기에 배 띄운다면 탁가 고요히 들리겠지[虛舟一汔櫂歌門]
[특징]
이후연(李厚淵)은 「백원서원」에서 ‘백원서원은 학문과 세상 이야기를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라며 온갖 먼지에 쌓인 세상의 피로를 풀어주는 공간으로서 백원서원을 예찬하고 있다. 선현들은 정자와 달리 서원은 경치가 좋은 장소에 있게 되면 완물상지(玩物喪志)하게 되기 때문에 이를 경계했는데, 「백원서원」은 이 같은 중용적 공간에 있는 백원서원의 주변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