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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방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663
한자 南帶方郡
영어음역 Namdaebang-gun
이칭/별칭 대방,대방군,대방성,대방주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최윤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명
관련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삼국유사』|『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대동지지』

[정의]

중국 위(魏)나라가 삼국시대에 남원에 두었다고 추정되는 옛 행정 구역.

[형성 및 변천]

『삼국유사』에 중국의 후한(後漢)이 남원에 대방군(帶方郡)을 두었고, 위나라가 이를 남대방군으로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우리나라의 모든 지리지에는 한결같이 중국 후한 건안(建安) 연간에 남원에 대방군이 설치되었고, 위나라 때에 남대방군으로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떠한 이유로 이와 같은 인식이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기록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는 잘못된 『삼국유사』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고려사』 「지리지」에 그 원인이 있다고 추정된다.

남원이 대방이라는 인식은 아주 오래되었고,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예로는 고려 후기인 1310년(충선왕 2)에 남원부가 대방군으로 개칭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남원도호부 형승조(形勝條)에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보다도 먼저 세대인 이규보(李奎報)의 시가 실렸는데 거기에 ‘대방고군(帶方古郡)’이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남원이 중국의 대방군 또는 대방주였다거나 남원에 중국인들이 쌓은 대방성이 있다는 등의 설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어처구니 없는 오해라 할 수 있다.

[관련기록]

남원에 남대방군이 설치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북대방은 본래 죽담성이다. 신라 노례왕 4년에 대방인들이 낙랑인들과 함께 신라에 투항하였다. 이는 다 전한이 설치한 2군의 이름인데 함부로 나라라고 일컫다가 이제 항복해 온 것이다.”(『삼국유사』1, 북대방)

“조위 때에 비로소 남대방군을 두었으므로 남대방이라 한 것이며 대방의 남쪽에는 천리의 바다가 있어 한해라고 하였다. 후한 건안 년간에 마한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삼았는데 왜와 한이 드디어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삼국유사』1, 남대방)

반면, 『동국여지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남원은 본래 백제의 고룡군인데 후한 건안 중에 대방군이 되고 조위(曹魏) 때에 남대방군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건대 한강 이남의 땅은 당(唐) 이전에 중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무슨 근거로 남원만이 한(漢), 조위 때에 대방군이 되었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공손도와 조위가 설치한 대방군은 한 낙랑군의 대방 등 현이 군이 된 것으로서 요동에 가까운 해안 지대라는 것은 사지(史志)에 뚜렷하며 지금 남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고려사』 「지리지」는 남원의 옛 이름이 또한 대방인 것은 잘 모르고 공손도의 대방군을 잘못 기록한 것이며 『동국여지승람』 역시 이를 따름으로써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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