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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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城館石物 |
영어음역 | Yongseonggwan Seokmul |
영어의미역 | Stone Relic of Yongseonggw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192-4[용성로 29]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4월 1일 - 용성관석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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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용성관석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석조 문화재 |
건립시기/연도 | 통일신라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192-4[용성로 29] |
소유자 | 용성초등학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용성관(龍城館)에 있는 석조물.
[개설]
용성관석물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용성관은 통일 신라 때인 691년(신문왕 11)에 건립되어 조선 시대에는 관원들의 숙소인 객사로 사용되었으며, 그 규모가 웅대하였다.
한때는 조선 태조의 전패(殿牌: 전(殿)자를 새긴 나무패로 왕의 상징)를 모셔 ‘휼민관(恤民館)’이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위태롭게 되자 병마사 이복남(李福男)이 태조의 전패가 왜적에게 욕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본관을 소각하였다.
[위치]
남원역에서 만인의총으로 가다 보면 사거리 나오고 그 사거리 못 미쳐서 왼쪽에 용성초등학교가 있다. 용성초등학교 서쪽 옆 작은 골목길을 객사로라 하는데, 이곳에 용성관이 있었다.
[형태]
통일 신라 이후 여러 차례 불이 나는 바람에 다시 짓거나 보수 과정을 거쳤다. 용성관은 남원의 광한루, 관왕묘와 더불어 고대 건물의 3걸로 불렸으나 용성초등학교 본관 계단으로 사용되는 계단 1기와 용성관 기단 70m만 남아 있다.
잘 다듬은 계단에는 난간 양쪽에 반원을 그리듯 둥글게 처리된 석물이 놓여 있는데, 표면에 도깨비상을 조각해 놓아 독특한 모습이다. 처음에는 계단 1기만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으나, 1994년 7월 15일 석물 29기가 추가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 용성관 터는 용성초등학교가 들어서 옛 모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용성관석물도 용성초등학교의 본관 계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용성관이 처음 건립된 시기는 691년(신문왕 11)이나 몇 차례의 복원이 이루어져 용성관석물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