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2170 |
---|---|
한자 | 民間信仰 |
영어음역 | mingan sinang |
영어의미역 | folk beliefs |
이칭/별칭 | 민속종교,자연종교,원시종교,미개종교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집필자 | 오종근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종교적 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민간에서 전해 오는 여러 가지 신앙 형태.
[개설]
민간신앙은 민속학에서 한정된 분야에 그치지 않는 아주 다양하고 폭넓은 형태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신앙과 가택신앙을 비롯하여 탑제, 장승, 솟대, 입석, 거석과 같은 신앙물들이 모두 민간신앙에 속한다. 이외에도 세시풍속, 통과의례, 전설, 민속놀이, 민요 등에서도 민간신앙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민간신앙의 범주는 매우 포괄적이다.
지금까지 민간신앙은 지리적으로 교통이 불편하여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많이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남원시는 소백산맥 끝자락인 지리산을 끼고 있어 민간신앙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많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유형 및 현황]
1. 당산제
남원의 당산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민간신앙적 요소는 마을의 평화와 안녕에 주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남원 지역의 당산제는 현재 87개 마을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이는 남원의 공동체 신앙인 당산제가 남원 지역의 구성체를 통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실증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당산제의 신격은 자연신 중에서도 산신계(山神系)와 수신계(樹神系)가 대부분이다. 물론 초기에는 비교적 단순한 신을 제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후대에 내려오면서 외래 종교와 더불어 여러 잡신들이 분화되어 다양한 제신들이 나타났다.
남원의 당산제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여러 신을 제사하더라도 반드시 산신께 제사를 올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산간 지역이 많은 남원의 북동부 지역에서 산신이 가장 원초적인 기본신이었음을 의미한다.
산신이 기본신인 여성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생산의 신으로 인식된 산(山)과 수(樹)는 그런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것이 남원 당산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2. 탑제
남원의 탑제는 당산제와 병행하여 실시되며, 지역에 따라 조산(造山)·돌무데기·조탑(造塔)이라고 부른다. 탑은 불교의 전용물이지만 그 형태를 민간에서 비보 형태로, 특히 풍수설에 입각해서 활용한 것이 조탑이다. 이는 불교의 비보 신앙이 풍수의 비보와 같이 어우러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남원 지역에 실제로 조성된 조탑은 모두 스물두 군데 마을에 산재해 있다. 남원의 탑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마을을 비보하는 풍수사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이는 곧 마을의 공동체 신앙과 외부 종교와의 만남을 의미한다.
남원 지역의 탑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탑에다 금줄을 여러 겹 두른다는 점이다. 당산제에서 줄다리기가 끝나면, 그 줄을 당산에 두르는 “옷을 입히는 신앙행위”를 하는데, 그와 같은 행위가 남원의 탑제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3. 장승
장승은 일반적으로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 세워졌다. 지역에 따라 돌장승·석장승으로도 불리는데, 모두 23기가 산재해 있다. 대부분의 장승에 쓰여진 명문은 “대장군”·“상원주장군”·“진서대장군”·“방어대장군”·“동방축귀대장군”·“서방축귀대장군”·“옹호금사축귀대장군” 등인데, 명문상으로 보면 방위신장군류(方位神將軍類)가 대부분이다.
실상사 앞에 세워진 석장승은 1969년 국가민속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실상사 석장승은 전라남도 지방의 도갑사·보림사·불회사, 경상남도의 통도사, 서울특별시의 봉은사 사찰 입구에 세워진 장승들 중 대표적인 것이다. 실상사 석장승에는 “옹정(擁正) 3년(1725)”이라는 연대가 새겨져 있다.
남원 지역에 세워진 장승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모두가 불법 수호신, 또는 마을 수호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장승의 분포도를 보면 평야 지대에는 한 점도 없는데 동부 산간 지역에만 집중적으로 23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가 수많은 전투를 하였던 접경 지역인 만큼 마을의 생존권이 달린 존망의 기로에서 마을 공동체의 생명을 지켜 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