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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신령과 우투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2378
한자 智異山山神靈-
영어음역 Jirisan Sansillyeonggwa Uturi
영어의미역 Jirisan Mountain Spirit and Uturi
이칭/별칭 우투리 전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신정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주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담|신이담|영웅담
주요 등장인물 이성계|진안전씨|우투리
관련지명 지리산|절두|성수산|왕방리
모티프 유형 하늘의 허락|천상의 과일|아기장수 설화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신정리에서 이성계의 득국(得國)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남원 지역에는 이성계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구를 물리친 용맹스러움뿐만 아니라,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는 과정에서 원만하지 못했던 지리산 산신령과의 관계와 우투리(아기장수)와의 관계 등이 전설의 형태로 전해 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곧 이성계가 민중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나라를 세웠음을 의미한다. 우투리 전설은 ‘울때기 설화’라고도 하는데, 경상남도 함양과 전라남도 구례, 전라북도 남원 등 지리산 부근에서 특히 많이 전해 온다.

[채록/수집상황]

1979년 8월 3일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신정리에서 최래옥과 김호선이 채록하여,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5-1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김일권(남, 69세)이다.

[내용]

옛날에 이성계는 성수면 성수산에서 공부를 했다. 이제 임금이 될 마음으로 이런 저런 것들을 다 챙기고 등극을 하려는데, 팔도의 산신령은 모두 다 신임을 하는데 지리산 산신령만 신임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절두에 와서 천제 산신제를 지내려고 하였다.

하루는 소금장수인 진안전씨가 소금을 지게에 지고 시장에 내다 팔려고 길을 떠났다. 때는 가을철이고 날이 저물어 잠자리를 구했지만 마땅히 잘 곳이 없었다. 왕방리라는 동네 앞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는데, 한아름 되는 정자나무가 오래 되어서 나무 가운데가 텅 비어 있었다. 날씨는 추워지고 잘 곳을 찾던 전씨는 정자나무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었는데 사람 소리가 났다. 그러나 이 소리는 사람이 아니라 산신령의 소리였다. 산신령은 이성계가 성수산에서 천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같이 가보자고 하였다. 전씨는 귀신인 척하면서 오늘은 손님이 와서 갈 수가 없으니 자네나 가보라고 하였다.

밤이 야심한 때에 산신이 돌아왔다. 잘 얻어먹었느냐고 물으니까 부정이 나서 먹지 못하고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냥 오기가 섭섭해서 삼실과를 가져왔으니 하나 먹어 보라며 고목나무 밑에 놓았다. 전씨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면 천제를 다시 지내야 하는가?”고 물으니, “상토(上土)를 놓고 금줄을 치고 기구(祈求)를 잘하면 부정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전씨는 삼실과를 가지고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성계는 지난 밤 천제를 지내느라 애를 썼는지 늦잠을 자고 있었다. 이성계에게 천제를 지낼 때 실과를 몇 개나 놓았느냐고 물었다. 이성계가 실과가 부족하였다고 하자, 전씨는 산신에게서 받은 실과를 내어놓으며 천제를 지낼 때 이 실과를 쓰라고 하였다. 그 실과가 무슨 실과냐고 하니까 전씨는 이성계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성계는 1주일간 기구(祈求)를 하고 목욕재계를 하고 의복을 깨끗이 하고 다시금 천제를 올렸다. 그리고 드디어 지리산 산신의 허락을 받았다. 허락을 받았으나 우투리를 죽여야만 왕이 될 수 있었다.

우투리 장군은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몰래 숨어 버렸다. 이성계는 우투리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어느 마을 정자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마을 아낙네들이, “오늘은 뉘 밭을 매고 내일은 우툴네 밭을 매고.”라는 말을 하였다.

우투리가 이 마을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이성계는 우투리네 집으로 갔다. 우투리 어머니는 서방도 없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우투리 어머니와 함께 부부 생활을 하였다. 부부 생활을 한 지 몇 년이 지난 뒤에 이성계는 부인에게 “자식이 없느냐?”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 부인은 푸념하듯 자식이 하나 있는데 우투리라고 하였다.

이성계는 “내가 임자를 믿고 살고 있으니 우투리는 내 아들도 되고, 우투리에게는 아비도 되니 자식 있는 곳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부인이 산에 올라가 큰 바위 앞에 서더니 이곳에 우투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큰 바위를 열십자로 그으니 바위가 쩍 갈라지면서 투구를 쓴 우투리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성계는 얼른 일어나 칼로 우투리를 죽였다. 그 후 이성계는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모티브 분석]

「지리산 산신령과 우투리」의 기본 모티브는 ‘하늘의 허락’과 ‘아기장수 설화’이다. 영웅담과 관련하여 최종적으로 영웅임을 인정하는 것은 하늘이다. 하늘은 산신령으로 변이돼서 나타나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행하는 일의 신성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하늘의 뜻, 즉 민중의 뜻을 헤아려야 함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천제를 받지 않으려는 산신령의 마음을 돌린 것은 ‘천상의 과일’이다. 천상의 과일은 서양의 선악과 모티브와 원형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상의 과일을 얻게 되는 것은 신선을 통해서이며, 신선의 이야기를 엿들음으로써 이성계에게 생긴 난관을 해결하게 된다. 우연한 조력자의 우연한 도움으로 이성계는 산신령에게 천제를 올려 지리산 산신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모티브인 아기장수 설화는 아기장수 우투리가 어머니 때문에 조선의 태조 이성계에게 죽음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우투리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인물이었으나 영웅이 되기 직전 이성계에게 죽음을 당하여 결국은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성계가 직접 우투리를 죽였다고 전해지는 것도 있고, 이성계가 관군에게 고발하여 관군이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죽었던 우투리가 산짐승 덕택에 다시 살아난다는 변이형도 있는데, 다시 살아났다 해도 아기장수는 과업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투리를 다시 살린 것은, 아기장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하층민의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투리는 바로 하층민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이성계로 표상되는 지배층에 대한 반감을 내포하고 있는 「지리산 산신령과 우투리」가 조선시대에도 끊이지 않고 전해 온 것은, 지배층의 횡포를 그대로 수긍할 수 없다는 저항 의식과 함께 바람직한 역사적 전환에 대한 기대가 지속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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